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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사형수
“죄인 곽건, 남성, 33세, 1975년생 1월 11일생. HSH를 조직하고 이끈 혐의에, 살인죄, 상해죄, 방화죄, 강도죄, 불법매매, 불법총기소지죄, 폭발물 사용죄, 강간죄, 밀수죄, 성추행, 겁박죄, 불법도박죄, 공갈죄, 뇌물수수, 불법구류죄, 금융법 위반. 이상의 죄목과 증인 및 증거 충분으로, 공정 재판을 거쳐 모든 범죄사실이 인정되었다. 본 법원은 법정 협의를 거쳐서 재판의 판결을 내리겠다.”
여기 까지 말하며 재판관은 주위를 둘러보고, 청중 모두가 일어선 걸 확인하곤 손에 든 판결문을 읽었다.
“피고인 곽건을 사형에 처하며 모든 정치적 권리를 영구히 박탈한다. 이 판결은 최종 판결로 상고할 수 없으며 즉시 집행된다. G성 법원, 2008년 4월 4일. 퇴정!”
장엄하고 엄숙한 법정 내에서 판결을 들은 사람들이 기립박수를 치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어떤 이는 소리 높여 말하기도 했다.
“해충 박멸이구나!”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 있던 재판관은 그대로 퇴장했다.
피고인석에 앉아있던 피고인은 죄수복에 빡빡 민머리를 하고 있었다. 실탄을 장착한 무장경비가 그의 양 어깨를 제압하고, 그를 데리고 나갔다. 그의 팔다리에는 무거운 족쇄와 수갑이 채워져 있었고, 그것이 땅에 끌려 소리를 내었다.
느긋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피고인은 비록 즉결 사형이라는 판결을 받았지만, 오히려 입꼬리를 슬쩍 올리곤 시종 담담한 미소를 잃지 않았다.
문 입구까지 가자, 환한 햇볕이 그의 대머리를 비추었다. 곽건이 잠시 걸음을 멈추고 심호흡을 하자, 마음이 편안해지더니 알 수 없는 감각이 느껴졌다. 손에 차가운 수갑을 찼는데도 오히려 따뜻함이 느껴졌다. 그의 눈길이 주위에 있는 시민들에게로 향했다.
“저게 곽건이야? 나쁜 사람같이 생기지는 않았는데? 저렇게 젊은데, 왜 공부는 안하고.”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나이가 많은 탓인지, 아니면 눈이 나빠서인지 힘껏 그를 노려보았다. 아마 전국적으로 유명한 나쁜 놈이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를 보는 것 같았다. 곁에 있던 다른 사람들도 할머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기자들은 플래시를 터트리며 찰칵찰칵 소리 내어 사진을 찍었고, 무장한 경찰들은 이들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곽건은 할머니를 향해 깊이 허리를 숙였다. 백발이 성성한 할머니가 소리쳤다.
“아이야, 다음 생엔 꼭 좋은 사람이 되어라!”
곽건은 웃어보였고, 그의 뒤에선 무장 경비들이 그를 밀며 길을 재촉했다. 낭창거리며 계단을 내려가자, 기다리고 있던 수송차의 뒷문이 열렸다. 무장경찰들은 그를 안으로 밀어 넣고는 같이 들어가 앉았다. 차 문이 닫히고 사이렌이 울렸다. 국민들의 눈총을 받는 수송차들은 사이렌을 울리며 법원을 벗어났다.
수송차들은 교외에서 주행을 했다. 별을 달고 있는 중년의 군관처럼 생긴 무장경비가, 맞은편에 앉아 있는 곽건을 가늠하고 있었다. 요즘 말로 하자면 잘생기고 폼 나는 젊은이였다. 만약 그의 복색이 달랐다면, 그 누구도 저자가 악독한 사형수임을 모를 터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저자는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인가?
빠르게 지나쳐가는 풍경을 보다가, 곽건은 맞은편 사람의 시선을 느끼고는, 고개를 돌려 군관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형님! 담배 한 대만 주실래요?”
중년의 군관은 이런 임무를 여러 번 맡아봤지만 저자의 표정과 태도는 도무지 죽으러 가는 사람 같지 않았다. 그래서 긴장하며 범인을 주시했다. 양쪽에 앉은 무장 경비도 손가락으로 방아쇠를 매만지며 죄수를 주시했다.
곽건은 쓴웃음을 짓곤 고개를 내저었다.
“이게 무슨 홍콩 영화도 아니고, 설마 내가 도망갈까 봐 그럽니까? 아님 누가 와서 차량탈취라도 할까봐? 이렇게 묶여있는데, 그게 되겠어요? 그런 일을 할 사람이 몇이나 된다고…….”
그러나 그가 뭘 하던 간에 무장경비는 한 마디도 안하고,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했다.
“아이고! 그냥 담배잖아요! 뭘 그렇게 긴장하는 거야.”
곽건은 이들의 견장을 힐끗 보고는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려 탄식했다.
“옛날 생각나네. 나도 예전엔 군인이었고, 총도 쏘고, 공도 세워보고, 상도 받았고, 땀도 흘렸고, 피도 흘렸었는데!”
이 말을 뱉곤, 말 한마디 없이 우수에 잠긴 채 창밖을 보았다.
군관과 경비들이 그의 말을 듣고는 조금 놀랐다. 군관은 경계를 살짝 풀었고, 경비들도 무의식적으로 손가락을 방아쇠에서 내려놓았다.
군관은 곽건을 이리저리 살피다가 잠시 멈칫하고는 결국 그에게 물었다.
“너도 군인이었다고? 무장경비 아님 해방군?”
“후자요.”
곽건은 고개를 돌려 웃었다. 군관은 고민을 하다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갑을 꺼내 한 개비 뽑아, 불을 붙여 조심스럽게 그에게 건네주었다. 곽건은 감사를 표하고는 손가락에 담배를 끼우고 입에 물어 깊게 한숨을 삼켰다.
맞은편에 앉은 이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그를 쳐다봤고 곽건은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1993년에 입대를 했고, 보병이었는데 국경선에서 삼 년 있었지. 퇴역하고 고향으로 돌아갔고. 집에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있으시고, 형제자매는 없었지. 그런데 다녀오니까 아버지는 내가 복무한지 이 년 만에 병에 걸리셨고, 치료비가 없어서 이미 돌아가신 후였어. 아버지는 내가 부대에서 출세하면서 다른 생각 따윈 못하게, 임종 전에도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나에게 말하지 말라 하셨더라고. 집에 돌아가니 아버지는 없고, 어머니께서도 병에 걸리셔서 침대에 누워계시더라. 슬픈 건 슬픈 거고, 산 사람은 그래도 계속 살아야지. 설상가상으로 어머니도 병에 걸리셨는데, 나한테 있는 돈이라고는 퇴역할 때 받은 돈 조금이랑 평소에 모아둔 돈 500불 밖에 없었지. 어머니를 모시고 시내로 나가 검사를 받고 약을 좀 사니까 돈이 다 떨어져가더라고. 전우들과 집안사람들의 도움으로 돈을 좀 모아서 어머니를 병원에 모셨지. 그런데 그 입원비라는 게 우리 촌사람들 수준으론 감당이 안 돼.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어머니를 전우에게 잠시 맡기고 남쪽으로 돈을 벌려고 갔지. 돈을 벌어서 어머니의 병을 고치려고 말이야.”
여기까지 말하는 동안, 손에 든 담배는 이미 타서 꽁지만 남았고, 손에서 떨어져 차의 바닥에 닿았다.
가죽 신발을 신은 이가 발로 담뱃불을 껐다. 군관은 그에게 담배 하나를 더 물려주고는 말했다.
“계속!”
“고마워!”
곽건은 다시 담배를 깊게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도시에 가서 지인의 도움으로 날품팔이가 되었고, 매일같이 건물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벽돌을 옮겼지. 한 달에 200불, 숙식제공에 돈은 6개월에 한 번씩 주고. 비록 일은 힘들고 고되었지만, 보병 출신인 나에겐 별 거 아니었지. 매달 200불이면 우리 촌에선 한 가정의 반 년 수입에 맞먹어. 하! 반 년 후에 공사는 완공되었고 우리는 돈을 받을 때가 되었어. 그런데 사장이 도망갔더라고. 같이 일하던 사람들은 전부 돈을 벌려고 타지에서 온 사람들인데, 낯선 이 땅에서 도대체 어딜 가서 돈을 돌려받겠어. 지방정부에 말을 해도 소용없었지. 몇 번을 가봤는데 입구에서 못 들어가게 하더라고. 결국 어쩔 수 없었지, 뭐. 어머니는 아프고, 나는 기술이 없고. 어쩔 수 없이 또 일을 할 만한 데를 찾아서 계속 고된 일을 했지. 흐! 결국 이번에도 일을 했는데 또 돈은 못 받았어.”
“왜 고소를 하지 않은 거냐?”
군관이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무장경비들은 사형수의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다들 호기심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 악명이 자자한 곽건이 그런 일을 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고소?”
곽건이 담배를 한 모금 빨고는 냉소를 지었다.
“형님이 부대에 너무 오래 계셨네. 그때는 또 지금 같지가 않았어. 누굴 고소하던 소용이 없었지.”
군관은 난감한 안색으로 죄수의 손에서 담배꽁초를 받고는 밟아서 꺼버렸다. 그리곤 다시 새 담배에 불을 붙여 그에게 주며 짧게 물었다.
“그래서, 그 뒤는?”
“흥! 그 뒤? 어머니의 병세는 더 악화되었고, 급하게 수술비가 필요해졌지. 어머니를 맡긴 그 전우는 자기 집도 팔아서 나를 도왔어. 그때는 집값이 엄청 쌌지. 지금 팔았으면 열 배는 더 받을 걸 푼돈에 팔았어. 결국 집을 팔고 번 돈도 거의 다 쓰고 나니까, 나도 급해졌지. 바로 그때 우연히 내 돈을 떼어 먹은 사장과 마주쳤어. 돈 달라고 하니까 사람 불러서 나를 힘껏 패주더라고. 나도 화가 나서 예전 전우들에게 연락을 했지. 그간 일을 말하고 복수하자고 말이야. 하! 그래도 예전에 같이 전선을 넘나들던 전우들이라 그런지, 결국 다들 와주더라고. 같이 계획을 짜고 그 사장을 납치하고 협박해서 10만 불을 받아냈지. 그 사장은 가족들을 몰살시킬 거라고 협박하던데, 간이 콩알만 한 지 아직까지 복수는 안하더군.”
곽건이 웃으며 말했다.
“돈은 얻었지만 이미 늦었지. 어머니는 기다리지 못하시고 세상을 먼저 뜨셨어.”
“군인 출신이 어떻게 범법 행위를 한단 말인가?”
곽건의 목소리가 점점 낮아졌다가 돌연 군관을 보더니 화를 내며 목소리를 높였다.
“군인 출신이 뭐가 어떻다고! 만약 지금이 전쟁을 하던 시대였으면 나는 국가를 위해서 아무런 고민 없이 내 몸을 다 던졌을 거야. 다들 호국정신, 호국정신 하는데, 나는 내 부모조차 지키지 못했어. 그런데 그 군인정신을 내가 왜 지켜야 돼? 자, 봐봐! 그 금싸라기 같은 땅들을 누가 가지고 있는지! 호국을 한 군인들이? 아님 일반 국민들이?”
“그게 바로 매국이다. 국가의 이익을 해치는데 이유가 있는가? 설마 군인선서 할 때 한 말을 잊은 거냐……? 국가와 국민의 이익을 위해 모든 걸 바친다는 그 말을?”
군관도 마찬가지로 격하게 답했다. 차 안에 있던 경비들은 멍하니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들로서는 이런 상황이 처음이었다.
“국가의 이익을 해쳤다고? 그럴 수 있지. 하지만 매국이라는 말은 취소해. 나 곽건이 몇 년 동안 안 해본 일이 없지만, 절대 매국은 하지 않았다! 난 나의 죄목 모든 걸 받아들이지만 매국노라는 죄목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 만약 내가 그 죄목을 지고 간다면 난 죽어서도 눈을 못 감을 것이야.”
곽건이 맞은편을 보며 냉소를 지었다.
무장경비들은 그의 말이 이해가 되질 않았다. 중년의 군관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생각이 많은 얼굴로 그를 보며 말했다.
“오늘에 이르기까지 단 한 점의 후회도 없는가?”
“후회?”
곽건이 하하 웃으며 말했다.
“인생에 후회가 있어? 그게 소용은 있고?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이 언젠가는 마주칠 일이였어. 늦고 빠르고의 차이지. 십팔 년 후에는 또 호걸들의 시대겠지.”
“십팔 년 후에는 또 호걸들의 시대라고?”
군관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말했다.
“무협 소설을 너무 많이 본거 아니야?”
“하! 그럭저럭 봤지. 맞다, 소설을 볼만한 데를 소개해주지. 시간이 있다면 여기에 들어가 봐라. 볼 만한 게 꽤 많으니까.”
사이트를 알려주자 중년 군관은 ‘오’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고마워! 나중에 들어가 보지.”
수송차가 덜컹거리는 게 교외 밖으로 나선 것 같았다. 목적지가 머지않았다. 곽건은 가장 구석에 있는 경비를 보았다. 그는 쭉 검은색 복면을 쓰고는 단 한 번도 벗지 않았다. 그래서 군관에게 말했다.
“조금 있다가 저 친구가 나를 보내주는 건가?”
군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곽건은 그 복면을 뒤집어 쓴 경비에게 말했다.
“친구! 잘 부탁할게! 조금 있다가 침착하게 이 형님을 시원하게 보내줘!”
하지만 그를 신경 쓰는 이는 없었다. 아마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기 때문이리라.
죽음이 다가오자 곽건은 창문에 머리를 대고는, 마치 지금까지의 삶이 꿈만 같음을 느꼈다. 머릿속에 문득 노래 한 소절이 떠올라 입으로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어젯밤에, 어젯밤 별무리가, 떨어졌네, 은하 저 멀리로 사라져가네, 기억이 나고……”
차가 점점 느려지다니 멈춰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