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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7% 전직고수 / Chapter 1: 1화. 추방된 프로게이머
전직고수 전직고수 original

전직고수

Auteur: Butterfly Blue

© WebNovel

Chapitre 1: 1화. 추방된 프로게이머



1화. 추방된 프로게이머

타다닥, 달칵달칵…….

키보드와 마우스를 오가는 양손이 마치 악기를 연주하는 것처럼 빠르고 경쾌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스크린에서 화려한 빛이 스쳐 지나가자, 상대 캐릭터가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쾅!

그때 큰 소리와 함께 방문이 열렸다.

시우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왔어?”

“응. 왔어.”

소목등은 아직도 게임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시우를 보며 짧게 말했다.

“그럼 이제 가볼까?”

시우는 상대의 재도전을 거절하고는 의자에 걸려있던 외투를 들고 방을 나섰다.

매우 늦은 밤이었지만 글로리 대표팀 ‘지아스’의 사무실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뚜벅, 뚜벅.

함께 방에서 나온 시우와 소목등은 복도 끝까지 걸어가 그곳에 있는 회의실에 들어섰다.

회의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대형 스크린은 글로리 프로팀들의 전적 랭킹과 각종 기술에 대한 통계표가 나타나 있었다.

[전적 랭킹] 지아스 19위

한때 3연속 우승을 달성했던 에이스 팀으로서 이런 초라한 성적은 말도 되지 않았다. 그러나 회의실 안의 분위기는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뜨거운 열기를 띠고 있었다.

팀의 리더 예시우의 등장에도 지아스 멤버들은 그를 본체만체했다. 그들은 그와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차가운 조소를 날리고는 고개를 돌려 누군가를 향해 밝은 미소를 보였다.

“예시우, 앞으로 손시앙이 팀 리더다. 네가 쓰던 ‘일엽지추(一葉之秋)’ 캐릭터도 손시앙이 쓰게 될 거고. 이의 없지?”

팀의 매니저가 시우에게 다가와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사전 고지도 없는 일방적인 통보였다.

화가 난 소목등이 뭔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시우가 그런 그녀를 막아서며 고개를 저었다.

회의 테이블의 가장 상석, 본래 예시우의 자리인 지아스 리더 전용 자리에 앉아있던 손시앙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멤버들 사이로 시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죄송해요. 오자마자 형의 자리를 차지하게 됐네요…….”

분명 안타깝다는 어투였지만, 그의 얼굴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시우를 무시하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아니야! 네게 더 어울리는 자리니까 상관없어.”

멤버들은 손사래를 치며 손시앙을 치켜세우기 시작했다.

“그래, 한물간 놈에게 이런 자리는 과분하다고!”

“이제 그만 물러날 때도 됐어!”

“‘일엽지추’도 손시앙 네가 플레이하기 시작하면, 실력을 다시 발휘할 수 있을 거야!”

다들 손시앙에게 거는 기대가 매우 컸다.

손시앙, 그는 천부적인 재능이 있는 선수였다.

작년 프로팀에 입단한 그는 신인왕의 타이틀을 따낸 것도 모자라, 개인점수도 아주 우수해 그해의 MVP에게 밀리지 않았다. 심지어 본 리그에서 신생프로팀인 ‘월운전대(越雲戰隊)’를 이끌고 8위라는 놀라운 성적을 거두었다.

경기를 계속했었다면 더 높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겠지만, 왜인지 모르게 그는 도중에 하락세를 달리고 있던 지아스로 이적해버렸다. 사실 그 모든 것은 글로리 프로팀에서 가장 뛰어난 전투법사 ‘일엽지추’를 노리고 온 것이지만 말이다.

“예시우, 어서 네 캐릭을 손시앙에게 넘겨.”

매니저가 다시 재촉했다.

시우는 매우 덤덤해 보였다. 하지만 정말 괜찮은 건 아니었다.

글로리를 처음 시작하며 만들었던 캐릭터 ‘일엽지추’는 시우에게 의미가 남달랐다.

게임을 갓 시작한 초보시절부터, 영광의 자리를 누리는 프로선수가 되기까지, ‘일엽지추’는 무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와 함께한 ‘동료’였다.

‘내가 그때 계약서에 사인을 하지 않았더라면……’

시우는 7년 전 프로팀과 계약했던 날을 회상하며 후회했다.

그 당시 그는 프로팀 입단과 동시에 ‘일엽지추’의 소유권을 팀에게 양도한다는 내용에 서명을 했었다.

그 계약서에 서명을 하며 그는 분명 ‘일엽지추’와 떨어질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날이 이렇게 빨리 오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우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은색 카드를 꺼내 손시앙에게 내밀었다.

그 카드를 보는 순간, 손시앙의 눈에선 감출 수 없는 흥분과 탐욕이 흘러내렸다.

그가 보잘것없는 지아스에 온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일엽지추’라는 캐릭터를 플레이할 수 있는 이 ID카드를 얻기 위해서였다.

손시앙은 환희에 찬 얼굴로 그 카드를 받으려고 손을 내밀었다. 하지만 시우는 아직 미련이 남았는지 손을 놓지 못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카드 양 끝을 꼭 잡고 서로 팽팽하게 힘겨루기를 했다. 손시앙은 그의 미련함을 비웃는 듯, 비아냥거리며 말했다.

“형, 좀 놔주시죠? 현재 상황에 ‘일엽지추’를 플레이한다는 것이 가당키나 해요? 이제 제가 형을 대신해서 잘 써드릴게요. 이 캐릭을 제가 다시 영광의 자리에 올려놓을게요. 형은 이제 쉬실 때도 되셨잖아요?”

손시앙의 말에 줄곧 무덤덤한 얼굴을 하고 있던 시우의 눈매가 갑자기 매서워졌다.

“너, 이 게임 좋아해?”

“뭐라고요?”

갑작스런 시우의 질문에 손시앙이 되물었다.

“만약 좋아한다면 모든 걸 영광으로 생각해. 자랑거리가 아니라.”

“뜬금없이 무슨 소리예요?”

손시앙은 언성을 높였다. 자신에게 처참하게 밀린 주제에 훈계를 하자 화가 난 것이다.

“잘 간수해.”

손시앙이 다시 입을 열려던 순간, 시우는 카드를 잡고 있던 손을 놓고는 회의실을 빠져나가기 위해 몸을 돌렸다.

“야, 예시우!”

그가 막 문을 나서려던 순간, 매니저가 그를 다시 불러 세웠다.

예시우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살짝 돌렸다.

“지금 우리 팀엔 경기에 참가할만한 캐릭이 없으니, 일단 팀 훈련 상대로 있어 줘.”

팀의 최고 전성기를 만들어낸 주역이자, 모든 이들의 존경을 받던 프로선수가 고작 연습 상대라니!

매니저는 시우의 마지막 자존심까지 짓밟아버렸다.

시우는 피식 실소를 흘리고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어떡하죠? 지아스와의 계약을 해지할 거라서, 그건 못할 것 같은데.”

“해지?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거야?”

매니저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해지할 겁니다.”

“예시우, 왜 이래. 이러지 마.”

시우가 계속해서 자신의 입장을 고수할 것 같아 보이자, 소목등은 인상을 쓰며 그를 말렸다.

“계약 기간이 끝나기 전에 해지하면 위약금이 얼만지 알아?”

시우의 곁으로 다가간 소목등은 그를 조용하게 타일렀다.

시우의 계약기간은 아직 6개월이나 남아 있었다. 그러기에 만약 그가 먼저 계약을 해지하게 되면, 큰 손실을 감수해야만 했다.

하지만 소목등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엄청난 액수의 위약금이 아니었다.

바로 예시우가 떠난다는 것 그 자체였다.

“예시우, 사장님 오시면 다시 얘기해보자. 응?”

소목등은 시우가 냉정을 찾길 바라며 애원했다.

하지만 매니저의 입가에 걸린 조롱을 눈치채 버린 시우는 씁쓸한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직 모르겠어? 날 내보내려는 게 이들의 목적이야. 나는 이미 팀에 있어서 더 이상 이용가치가 없다는 거잖아.”

“역시 프로다워. 주제 파악하는 건 손만큼 녹슬지 않았구나. 그래, 계약 해지는 네가 선택한 거야!”

시우의 말에 매니저가 비웃음을 날렸다.

“맞습니다. 제 선택이죠.”

시우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글로리’ 프로팀은 구단의 거대한 수입원이었다.

특히나 유명한 대표선수들은 광고, 혹은 TV 프로에 섭외되어 팀에게 거대한 액수의 수익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시우는 탑 에이스 선수임에도 불구하고 광고나 TV 프로, 심지어 잡지나 신문 등의 인터뷰도 모두 거절했었다.

팀은 이러한 점에 대해 못마땅할 수밖에 없었다. 돈이 굴러들어올 절호의 기회를 눈앞에서 날려버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시우는 어느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실력이 대단해 사람들 사이에서 매우 유명했다. 팀은 그 유명세를 타고 또 다른 수입을 챙길 수 있어, 여태껏 시우의 확고한 태도를 눈감아준 것이었다.

하지만 플레이능력이 떨어진 지금, 시우는 팀에서 눈엣가시였다.

소목등은 결연한 시우의 얼굴을 보며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 역시 시우와 같은 길을 걸어온 사람이라 그가 어떤 사람인지, 이 바닥이 얼마나 치졸하고 더러운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녀의 두 눈에 눈물이 가득 차오르자, 시우는 소목등의 어깨를 잡으며 낮게 읊조렸다.

“걱정 마. 나, 포기 안 해. 다시 돌아올 거야.”

매니저는 두 사람을 보며 피식 웃었다.

“역시 패기가 넘치네. 음, 그럼 계약 해지 건에 대한 얘기를 해볼까? 사실 너와 오랜 시간을 함께한 만큼, 우리도 너에게 배려를 해주고 싶어. 어때?”

“네, 말씀하세요.”

시우는 소목등에게 시선을 떼고는 매니저를 바라보았다.

“위약금 대신 은퇴 선언해.”

“지금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소목등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예시우의 나이는 25살이었다. 프로게이머로서의 수명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시우라면 앞으로 재도약이 가능할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은퇴라니.

예시우를 완전히 주저앉게 만들겠다는 말이나 다름없었다.

은퇴한 선수는 1년간 경기에 참가할 수 없다. 은퇴와 복귀를 반복하는 행위를 막기 위해 은퇴한 시점으로부터 최소 1년 뒤에 복귀를 허용하는 것이 협회의 규정이다.

하지만 시우는 거의 프로게이머 인생의 말년을 보내고 있는 입장이었고, 그런 그에게 일 년 일 년은 매우 소중할 수밖에 없었다. 1년 뒤에 다시 복귀한다고 해도 떨어진 컨디션으로 인해 예전의 실력을 발휘하기 어려울 터였다. 그럼 당연하게도 그를 받아줄 팀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에겐 매우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바로 상업적 활동을 거부한다는 것이었다.

정말 말도 안 되는 요구였지만, 시우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안돼, 예시우!”

“그동안 쉬지도 못했는데, 이참에 1년 정도 쉬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대체…… 무슨 생각이야?”

“소목등, 걱정 말래도.”

소목등을 안심시키려는 시우에게 매니저가 바로 서류를 건네줬다. 서류를 받아든 시우는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다는 듯 이미 모든 서류를 준비해 뒀던 것이다.

시우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미련도 남기지 않고 자신이 7년 동안 몸담았던 곳을 떠났다.

* * *

“소목등은 쟤를 대체 왜 잡아두려는 거야?”

시우와 소목등이 자리를 떠나자마자, 여기저기서 시우의 뒷담화가 시작되었다.

“그러게 말이야. 솔직히 여기 남아있어 봤자, 쟤가 뭘 더 할 수 있는데? 안 그래?”

“내 말이.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도 모르나.”

다들 한마디씩 했지만, 손시앙은 그들의 대화에 끼지 않았다.

그는 매니저의 곁으로 다가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저는 이해 안 돼요. 이런 조건을 왜 받아들인 걸까요?”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니까.”

“왜죠?”

“위약금을 낼 수가 없거든.”

“네? 어째서요?”

손시앙은 깜짝 놀랐다.

예시우는 7년간 활동한 프로게이머였다. 부수적인 상업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해도, 연봉만으로도 위약금은 충분히 충당할 수 있을 것이었다.

“넌 이전에 이 바닥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서 그래. 예시우가 들어올 당시엔 프로게이머들이 이렇게 각광 받지도 않았고, 다들 입에 풀칠이나 하면 다행이었지. 게임에 미친 사람들은 게임에 청춘을 다 바쳐버렸고, 아무것도 이룬 것 없이 성인이 된 사람들은 결국 사회에서 도태됐어. 게임만 할 줄 아는 바보가 된 거야. 그리고 예시우에겐 그런 삶을 사는 친구들이 아주 많아.”

“그럼, 지금까지 친구들 챙기느라 자기 돈을 다 쓴 건가요?”

“맞아.”

손시앙의 물음에 매니저는 피식 웃었다.

“그럼 돈이 많이 필요했을 텐데, 상업적인 활동은 왜 다 거절한 거죠?”

“글쎄다. 그 이유는 아무도 몰라.”

매니저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하자 손시앙은 인상을 쓰며 물었다.

“짐작 가는 것도 없나요?”

“음, 어쩌면 예시우의 집안과 관련이 있을지도 모르지. 예시우 쟤는 절대 자기 집안과 관련된 얘기를 하지 않거든.”

“뭐가 뭔지는 몰라도 꽤나 많은 사연이 있나 보네요.”

손시앙은 시우가 건네준 ‘일엽지추’ ID카드를 보며 중얼거렸다.

“됐어, 이제 예시우 얘기는 그만해. 자, 사장님께서 오늘 일이 있어 못 오신다고 축하 선물을 보내셨다. 여기.”

매니저가 잘 포장된 선물상자를 건네며 말했다.

“와, 샴페인이네요? 하하!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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