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쾌활림의 변화
“소 대형!”
쾌활림으로 돌아온 황병성이 흥분한 기색으로 호삼의 의사를 전하였는데 이신은 전혀 놀라지 않고 속으로만 냉소할 따름이었다.
‘생각보다 의부의 탐욕이 크군.’
이신은 호삼이 일을 전부 처리한 자신에게는 겨우 은자 이천 냥만을 남겨주었다는 것에 탄식하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순덕도방의 부지에는 별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이천 냥 중 천이백은 나가겠고. 남은 팔백 냥으로 순덕도방을 꾸밀 수 있겠느냐?”
이신이 묻자 황병성이 대답했다.
“대형, 지부를 만드시려 합니까? 편액이나 새로 맞추고 의자나 탁자를 새로 들여 놓는다면야 돈은 충분하지만 될지 모르겠습니다.”
그는 조금 머리가 아파왔다. 아무래도 영원히 대형의 생각을 따라잡지 못 할 성 싶었다.
“돈은 충분하다만, 될지 모르겠다니?”
“비응방에선 대두목 급 이상만 지부를 가지고 있고, 다른 소두목들은 모두 자신의 저택에 거처를 두기 때문입니다.”
“방규(幇規)에 대두목 급 이상만 지부를 건립할 수 있다는 규정이 명시되어 있더냐?”
이신의 질문에 멈칫한 황병성이 곧 답했다.
“그건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럼 됐지, 내가 지부를 만들겠다는데 누가 뭐라 한다더냐.”
이신이 지부를 건립하려는 목적은 하나였다. 바로 수하들의 단결을 이끌어 내는 것.
낡은 주택의 아무 방에서 모이는 것과 넓은 지부의 대청에서 일을 논하는 것은 완전히 달랐다.
황병성도 곰곰이 생각을 하다 보니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하긴 소두목이 지부를 건립할 수 없다는 방규는 없었어. 다들 돈이 없어 엄두도 내지 못냈던 것이지.’
그도 그럴 것이 비응방 소두목은 기껏해야 세, 네 개 거리를 담당했고 월납금도 많아야 은자 천 냥 정도라 지부를 건립하기 위한 부지 구입비용 수만 냥을 구하지 못해 꿈도 꾸지 않았던 것이었다.
이신은 요리조리 눈을 굴리는 황병성을 향해 말했다.
“이 일은 네가 알아서 처리하고, 팔백 냥 은자 중 일 백 냥은 네가 쓰 거라. 남는 은자도 네가 관리를 하고.”
황병성이 조금 능글맞은 면이 있기는 했으나 꼼꼼하여 일처리는 믿을 만했다.
그리고 누군가 목숨을 바쳐 충성을 하길 바란다면 충분한 대가를 주어야했기에 이신은 전생에나 현생에나 아랫사람에게 항상 넉넉히 베풀었다.
“감사합니다, 대형! 앞으로 이 황병성 이 목숨을 바쳐 모시겠습니다.”
마른 가슴을 탕탕 치는 것이 황병성은 매우 감격한 듯 했다.
‘아부는…….’
이신은 그런 황병성을 보며 피식 웃었다.
* * *
황병성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가며 이신은 구운 닭고기를 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은희가 달려들며 작은 코를 킁킁 거렸다.
“와! 닭고기다.”
“우리 은희는 진짜 개코네. 손부터 닦고 먹자.”
이신이 소녀의 머리를 토닥이자, 은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씻으러 달려갔다.
누이와의 식사를 마친 이신은 사람을 불러다 뜰에 나무 말뚝 두 개를 박게 했고, 또 황병성을 불러서는 아문에 뇌물을 먹이는 김에 검 두 자루를 구해오라 일렀다.
상녕부에서 구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무기는 단연 조정의 것이었는데, 지금 그가 쓰고 있는 조악한 쇠꼬챙이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물건이었다.
황병성은 당장 아문으로 가 오십 냥 은자로 이신이 원하던 장검 두 자루를 바꿔왔다.
두 장검 중 하나는 세검(細劍)으로 석 자 길이에 손가락 두 마디 폭을 가진 가볍고 날렵한 종류였다.
다른 하나는 중검(重劍)으로 거의 넉 자에 달하며, 손가락 네 마디 폭을 지녀 육중한 칼날로 적을 베기에 적합했다.
두 자루 모두 날이 서늘한 것이 누군가 새로 갈아 둔 것이 분명했다.
휘릭! 휘릭!
그날부터 이신은 왼손엔 세검을 오른손에는 중검을 쥐고 뜰에 박아 놓은 나무 말뚝에 휘둘러댔는데, 검을 휘두르는 힘을 키운다기보다는 조준의 정확성을 기르고 있는 것이라 매번 말뚝에 닿자마자 칼을 멈추었다.
만약 말뚝에 다른 미세한 흔적이라도 남긴다면 실패로 간주했다.
현재 이신은 김무명의 쾌검과 대수미검식(大須弥劍式) 두 가지 검법을 지니고 있었다.
그 중 대수미검식은 수비를 위주로 한 것이라 초식이 번잡해 주로 쾌검이 적을 공격하는 동안의 빈틈을 메우기 위한 용도로 사용 되었다.
김무명의 쾌검을 숙련도 100 %까지 끌어 올릴 수 없다지만, 그래도 사람을 죽이는 데에는 이만한 것이 없었다.
빠르고 치명적이며 정확한 공격!
이신은 기본기를 마련할 겸 김무명의 쾌검의 숙련도를 높이는데 집중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오라버니가 이곳에서 검술을 연습하는 것을 본 은희는 방 앞 계단에 앉아 얌전히 지켜보고 있었다.
땀에 흠뻑 젖은 이신이 숨을 고르자, 은희가 바로 물과 수건을 가져다주었다.
“오라버니 나도 검을 배울 수 있어?”
은희가 가느다란 검을 보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배울 수 있지. 은희는 왜 검이 배우고 싶은데?”
이신이 의아한 눈빛으로 어린 소녀를 바라보았다. 이 나이 또래의 다른 여자 아이들은 검보다는 장신구를 좋아할 터였다.
은희가 작은 주먹을 쥐어 보였다.
“검법을 배워서 오라버니를 지켜줄 거야. 우리를 괴롭히는 나쁜 사람들도 다 혼내 줄 거야!”
이신은 피식 웃으며 누이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우리 은희가 있어 오라버니는 참 든든하다.”
이신은 곁에 있던 나무 말뚝을 쪼게, 은희를 위한 목검 한 자루를 만들어냈다.
그리고는 은희와 함께 나란히 나무 말뚝 앞에 서서 검을 수련했다.
한 달이라는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다.
이신은 저택에서 두문불출하며 수련에만 매진했고, 그러는 동안 위치를 옮긴 쾌활림의 대부분 점포는 이미 개장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이제 일이 여기까지 진행되었으니 주인장들도 물러설 곳이 없었다.
이신에게 지분도 넘겼겠다, 새로 이사를 하느라 막대한 은자를 투자했으니 이제 결과만을 기다릴 때였다.
* * *
밤의 장막이 내려오니 쾌활림 바깥에서 마차 하나가 들어왔다. 이제야 진정한 쾌활림의 낮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성동(城東) 손 가의 손 공자가 마차에서 내려 새로워진 거리를 둘러보았다.
“내가 오지 못한 한 달 사이에 이곳이 꽤나 달라졌구나. 어디 오늘 한번 제대로 놀아봐야겠다.”
손 가는 성동 최대의 약제 밀수상으로 전문적으로 남만(南蠻), 삼상(三湘) 지역의 희귀한 약재를 동진으로 밀수하는 이로, 쌓아 놓은 부가 어마어마한 쾌활림의 단골이었다.
쾌활림의 오랜 단골이 납셨으니 취월루의 주인인 유씨(劉氏)가 직접 나와 그를 맞았다.
“허허허, 손 공자 그간 격조하였습니다. 저희 취월루 아이들이 모두 공자를 보고 싶어 애가 닳았습니다.”
온화한 얼굴을 한 유씨가 허허 웃어대며 말했다.
손 공자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손을 비볐다.
“내 이곳이 닫힌 한 달 동안 얼마나 근질근질했는지 아는가? 일단 묵혀 놓은 끝발을 풀어 놓으러 순덕도방으로 가지.”
말을 하며 그가 익숙하게 걸음을 옮기려 하자 유씨(劉氏)가 서둘러 그를 말렸다.
“순덕도방은 문을 닫은 지 오래입니다. 새로 개업한 곳이 아주 고풍스러운데다 일손도 모두 순덕도방 사람들이니 그곳으로 가시죠.”
공 손자가 무슨 말이냐는 표정으로 물었다.
“황가(黃家)의 순덕도방은 돈을 쓸어 담는 수준이었는데,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문을 닫았지?”
잠깐 유씨의 얼굴에 어색함이 감돌았으나, 순식간에 표정을 바꾸고는 화제를 딴 곳으로 돌렸다.
취월루 옆의 순덕도방은 이미 이신에 의해 지부로 탈바꿈한 상태였고, 그 반대편에 새로 문을 연 융경도방(隆慶賭坊)이 있었다.
융경도방의 주인이 참으로 영민했다.
그는 황씨가 이신에게 당하고 재물까지 털리는 것을 보고는 이신은 일개 상인이 어찌할 상대가 아니란 것을 단번에 파악했다.
‘이기지 못할 자니 최대한 이득을 취하는 방향으로 가야겠군.’
하여 그는 과감히 이신에게 은자 천 냥을 바치더니, 취월루 바로 옆의 부지를 배정 받은 것이다.
* * *
융경도방 문 앞에 늘어선 취월루의 기생들을 본 손 공자가 놀라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취월루 여인들이 어찌 이곳에 와 있는 게야?”
“저희 쾌활림의 새로운 접객입니다.”
“뭐, 나쁘지 않구만.”
손공은 허허 웃으며 여인들과 함께 도방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쾌활림의 변화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어린 하인들이 곳곳을 누비며 누구든 원하는 대로 술과 주방에서 갓 만들어낸 음식을 내주고 있었다.
“하하! 도박에 여인에 음식과 술까지 모두 즐길 수 있다니. 아주 좋구나!”
손 공자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는 지나가는 하인에게 술을 주문한 후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은표를 내놓았다.
“한 달을 기다렸는데 오백 냥은 가지고 시작을 해야지! 대(大)에 걸겠다.”
“어머, 오백 냥!”
“손 공자님! 이리 배포가 크시다뇨.”
공자의 옆에 앉은 두 여인이 감탄하자 손 공자의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던져진 주사위는 여러 차례 구르더니 각각 5, 4, 4가 나와 총 십삼 점이 나왔고 이는 대(大)에 해당했다.
“핫하하! 아름다운 여인들이 내 곁에 있으니 운마저 따라주는 구나!”
크게 한바탕 웃고 난 손 공자는 자기 몫의 은전과 은표를 끌어와 잡히는 대로 두 여인의 손에 쥐어주고는 다시 도박에 매진했다.
두 여인의 손에 들린 은전과 은표는 무려 100 냥.
입구의 유씨(劉氏)는 진씨(陳氏)와 시선을 마주하며 미소를 나누었다.
* * *
이튿날 정오 온유향(溫柔鄕)에서 잠이 깬 손 공자는 어제 일을 떠올리며 헤실헤실 웃음을 흘렸다.
“쾌활림이 이리 절묘하게 변하다니! 창덕성은 이곳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하니, 다른 공자들을 데려와 창덕성의 촌티를 싹 벗겨 주어야겠어!”
개장 첫날이었지만 쾌활림은 벌써 손 공자 등 여러 단골들의 마음에 쏙 들었다.
상녕부는 무척이나 크다지만 소문이 돌기에는 하루면 충분했다.
쾌활림을 찾는 부자들의 행렬은 터져버린 샘물처럼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났고, 창덕성 쪽 청루나 도방이 대책을 세우려 했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쾌활림의 객점들이 앉아 수익은 이전보다 두 배, 아니 적어도 세 배는 불어있었다.
그중 취월루 유씨의 경우에는 다섯 배 이상의 매출을 냈다.
예전에 쾌활림에서 가장 많은 매출을 내던 업종이 황씨의 도방이었다면 지금은 취월루로 바뀐 것이다.
이렇게 이윤이 대폭 느니 이신에게 지분의 몫을 내주는 것도 당연했다.
하지만 이신은 그들을 믿지 않았고, 이윤을 분배할 때가 되면 황병성을 시켜 금전 계산이 능한 인물을 데려와 각 점포들을 감시했다.
“이윤을 숨기기 위해 장부를 조작한다면 다리를 부러뜨려 놓겠다.”
이신이 직접 이렇게 말하니 각 상가의 주인들도 감히 허튼 짓을 할 생각을 못했다.
* * *
황병성이 사람을 시켜 커다란 상자 두 개를 가지고 이신의 집을 찾았다. 그는 신이 나 물었다.
“대형! 이번 달에 상납금이 얼마나 들어왔는지 아십니까?”
“얼마나 들어왔지?”
황병성이 상자의 뚜껑을 거침없이 열어젖히니, 그 안에 반짝이는 은자가 한 가득이었다.
“자그마치 팔만 냥입니다. 이번 달이 이러니, 다음 달에는 더욱 손님이 불어 몇 만 냥이 거둬 질지 알 수가 없습니다.”
한껏 흥분해 얼굴이 달아오른 황병성이 외치자, 이신 역시 놀란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그렇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