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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 필드의 마법사 / Chapter 2: 필드의 마법사

Capitolo 2: 필드의 마법사

필드의 마법사

제2화

2화. 케니 번스

이혁은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술을 마시다 이상한 놈들과 시비가 붙어 싸웠고…….’

거기까지는 생각이 났다. 그런데 왜 갑자기 외국인들로 가득한 축구장에 와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처음에는 꿈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생생한 감각으로 볼 때, 결코 꿈은 아니었다.

그는 아직도 얼얼한 뒤통수를 어루만졌다.

“망할 놈들! 기습을 하는 것도 모자라서 뒤통수를 갈기다니!”

이혁은 이를 빠득빠득 갈았다.

그는 열렬한 축구팬이었다. 특별한 일이 없을 때는 스포츠 펍에 가서 술을 마시며 사람들과 경기를 보곤 했다. 최근 그가 응원하는 팀이 연패를 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가뜩이나 기분이 안 좋았는데 상대 팀 팬 두 명이 시비를 거는 것이었다. 멀쩡한 상태였다면 당연히 어느 정도 상대가 되었을 텐데 좀 취한 터라 그도 맞서 싸웠다. 그러다 술병에 뒤통수를 맞았다.

여기까지는 알겠는데 그 뒤부터가 희한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생판 모르는 곳에 와 있는 것으로도 모자라 한 흑인 남자가 돌진해 왔고 그와 부딪혀 바닥을 나뒹군 것이다.

또한 이상한 것은, 여기 사람들은 영어를 쓰는데 이상하게도 그들이 말하는 것을 전부 알아들을 수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이혁은 외국어에는 영 소질이 없어 영어로 말하는 건 물론이고 듣고 해석하는 것도 잘하지 못했다. 그는 분명 악바리 같은 면모가 있긴 했지만 ‘공부’라는 분야에서 그렇게 인내심을 발휘하는 편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으윽…….”

자기 자신에 대해 더 깊이 있는 생각을 하자 머리가 쪼개지는 듯한 고통이 몰려왔다. 이혁은 잔뜩 얼굴을 찌푸렸다.

“내 이름은 뭐지?”

고통이 잦아들자 그는 혼잣말을 했다. 다음 순간, 그는 놀라 벌떡 일어났다. 그제야 자신이 지금까지 했던 말들이 모두 영어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말도 안 돼!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이번에는 한국어. 영어와 한국어에 모두 능통하다니!

이혁은 미칠 것만 같았다. 자신의 머릿속에 두 사람이 있는 것만 같았다. 한쪽은 로니라는 노팅엄 포레스트의 축구 감독이고 다른 한 사람은 한국의 평범한 축구팬 이혁이다.

그는 너무도 혼란스러워 잠시 동안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냉정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혁은 눈을 감고 지금 일어난 일에 대해 차근차근 생각했다.

이곳은 잉글랜드의 프로축구 2부 리그인 챔피언십 경기가 열리고 있는 시티 그라운드라는 경기장이었고 현재 자신인 것으로 추정되는 ‘로니’라는 사람은 홈팀의 감독이었다.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또 누구인지 확실하게 알게 된 이혁은 다시 한 번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는 여전히 통로에 쓰러지듯 앉아 있었으며 맞은편에는 노팅엄 포레스트의 팀 로고가 있었고 밖에서는 커다란 함성이 들려왔다. 그는 망연자실해졌다.

* * *

“……오늘 오후에 시티 그라운드에서 생긴 일입니다. 노팅엄 포레스트의 로니 감독이 자기 팀 선수와 부딪히는 바람에 잠시 기절했었죠. 그리고 깨어난 뒤, 바로 어디론가 가 버리더군요. 데비 워커가 그를 대신해 경기를 마무리 짓고 기자회견에 나갔습니다. 그는 감독에 관한 이야기는 일체 하지 않았습니다.”

뉴스를 들으며, 이혁은 로니의 집에서 거울과 마주하고 있었다.

저녁 8시, 밖은 이미 어두운데 그는 불도 켜지 않고 오로지 밖에서 들어오는 가로등 불빛에 의지하여 자기의 얼굴을 바라봤다.

높은 코와 검은 눈, 곱슬거리는 갈색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 완전히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이혁은 평범한 한국의 26세 청년이었다. 하지만 거울에 비친 사람은 자신보다 나이가 들어 보이는 낯선 34세의 남자. 더군다나 지금은 그가 살던 2007년보다 훨씬 전인, 2003년 1월 1일이라는 게 그를 더 어이없게 만들었다. 집에 걸린 노팅엄 포레스트의 02~03시즌 달력이 이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왜인지는 당최 알 수 없지만 그는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다른 사람의 몸으로 들어왔다. 이혁은 원래의 자기 몸과 얼굴에 아주 크게 만족하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되기는 싫었다. 그것도 나이가 더 많은 사람이 되었다면 말할 것도 없다. 자기 것이 아닌 얼굴과 마주하자 속에서 화가 솟구쳐 올랐다.

“이 빌어먹을 놈은 누구야!”

그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거울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쨍그랑!

거울이 깨지며 그 속의 자신이 수십 명으로 나누어지고 바닥에 재차 부딪치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 이혁은 어지럼증을 느꼈다. 그는 뒤로 한 발짝 물러났다. 그는 벽에 기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암흑 속에서 몇 분간 멍하니 서 있던 이혁은 차츰 안정을 찾았다. 그는 우선 다른 복잡한 문제는 다 젖혀두기로 했다.

그가 한국의 이혁일 때는 일이 마음먹은 대로 풀리지 않을 때면 항상 술을 마시러 갔는데 지금도 술 생각이 간절했다. 그는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집 밖으로 나섰다.

* * *

“약팀인 월솔에게, 그것도 홈구장에서 0:3으로 지다니……. 노팅엄 포레스트의 올해 운수가 정말 사납습니다. 기대를 한 몸에 받았던 폴 하트도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고, 저번 경기를 마지막으로 사임을 했죠. 오늘은 로니 감독 대리가 첫 경기에서 자기 팀 선수 때문에 크게 다치고……. 영상을 보니 너무 놀라서 피하지도 못한 것 같았습니다.”

벽걸이 TV에서는 오늘의 스포츠 뉴스가 방영되고 있었다. 오늘 일어난 일이 꽤 자극적이라 노팅엄 포레스트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었다.

술집에서는 야유가 터져 나왔다.

“이렇게 창피한 감독은 또 처음이야!”

술에 잔뜩 취한 한 남자가 TV에 대고 중지를 치켜세웠다.

“망할 로니! 난 저 자식을 알아! 폴 하트의 심부름이나 하던 그 꼬맹이잖아! 솔직히 말해서, 그 자식은 감독을 할 깜이 아니야! 말도 잘 못하고 담도 작아서 덜덜 떨기나 하는 놈인데……. 그런 겁쟁이에게 노팅엄 포레스트를 맡기다니 이해가 안 돼! 이 팀은 망했어, 망했다고…….”

그는 중얼거리며 테이블 위에 엎드리더니 순식간에 뻗고 말았다.

그 취한 남자가 말을 막 마쳤을 때, 이혁은 술집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문 위에 달린 종이 딸랑딸랑 울리자 술집 안에 있던 사람들이 문을 쳐다보았고, 들어서는 사람이 누구인지 알아봤을 때, 그들의 얼굴에는 가장 먼저 놀라움이 떠올랐다. 그러나 그것은 이내 곧 비웃음으로 바뀌었다.

“하하하! 우리의 로니 감독님께서 왕림하셨군!”

한 중년 남자가 술잔을 치켜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주 노골적인 조롱 인사.

“우우우!”

안에서 술을 마시던 모든 사람이 그를 환영하는 야유 소리를 냈다.

“데이비드 존스의 탈출을 멋지게 막은 우리 감독님을 위해 건배!”

주위 사람들도 잔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건배!”

이혁이라고 이런 취급이 기분 나쁘지 않을 리 없었지만 괜히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그들을 무시한 채, 카운터로 다가갔다.

“가장 센 걸로 주세요.”

조롱하던 사람들은 그가 주문하는 것을 듣고 일제히 웃기 시작했다. 평소의 금욕적인 삶을 살던 로니를 생각해보면,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은 그저 만행에 가까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겁쟁이가 술도 마실 줄 알아?”

“방금 짠 우유나 마시지 그래?”

한 뚱뚱한 남자가 불룩 튀어나온 배를 쓰다듬으며 한마디 했다. 심지어 실제로 점원에게 팁을 건네며 토사물을 받을 봉투를 사오라고 시키는 사람도 있었다. 주위 사람들이 요란스럽게 웃기 시작했다.

점원이 술을 가지러 가자 잔뜩 취한 손님들이 그를 불러 세웠다.

“술은 무슨 술이야? 과일 주스나 가져다 줘!”

“우유나 가지고 와!”

“와하하하하!”

가게가 유난히 소란스러워 주인이 무슨 일인가 하고 나왔다.

“여러분, 무슨 일이죠?”

주인의 목소리가 뚜렷하게 울렸다. 그 거친 듯 단호한 느낌을 주는 음성을 들은 손님들은 웃는 것을 멈추었고 취객들도 그를 보고는 얌전해졌다.

이혁은 그가 고맙다는 생각보다 먼저, 어떤 사람이길래 사람들이 갑자기 고분고분해지는지 궁금해졌다. 주인이 안쪽에서 걸어 나왔다.

“사장님, 이 분이 센 술을 드시고 싶다는데요.”

점원은 걱정스럽다는 듯 이혁을 가리키며 말했다. 앉아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자 주인 역시 다소 놀라는 듯했다. 하지만 금세 표정을 되찾고 말했다.

“가져다 드려.”

“하지만 손님들이 못 가게 해서…….”

점원은 난감한 듯, 취객들을 돌아보았다.

“흠…….”

주인은 술집 안을 한 바퀴 훑어보았다. 그리고 한 명 한 명 시선을 마주쳤다. 그의 시선과 마주한 사람들은 얼른 자리로 돌아가거나 갑자기 술을 들이키거나 하면서 눈을 피했다.

“이제 못 가게 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군. 스카치위스키를 가지고 와. 내가 내지.”

점원이 술병을 가지고 왔다. 주인은 투명한 유리잔에 금빛 위스키를 따른 뒤, 반잔의 물을 섞었다. 그리고는 이혁에게 건넸다.

“제 고향에서 많이 마시는 술입니다.”

이혁은 술을 받아 한 모금 마셨다. 꽤 독한 술인데도 이혁은 마시고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주인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로니 감독님은 술을 안 마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이죠? 그야말로 신부님 같은 분 아니었습니까?”

“저, 저는…….”

로니가 평소에 어떻게 살았는지 그가 알게 뭐란 말인가. 그런 투정 어린 표정을 꿰뚫어 보기라도 한 것처럼 주인은 이혁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제가 아는 그 로니 감독님이 맞습니까?”

왠지 이혁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듯한 눈빛. 간파 당하는 듯한 느낌에 이혁은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방법을 궁리했다. 일단 이 사람은 자신과 예전부터 친분이 있던 사람 같은데 정확한 관계가 떠오르지 않았다. 혼란스러운 머릿속이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것이다.

“아, 전…….”

고개를 숙이고 다시 술을 한 모금 마셨다.

“오후에 경기장에서 넘어졌더니, 그때부터 기억이…….”

그러자 다시 한 번 웃음소리가 와-하고 터져 나왔다. 옆에 앉아 있던 사람이 주인이 누구인지 설명했다.

“우리 감독님이 넘어지면서 머리를 심하게 다치신 모양이지? 저분은 노팅엄 포레스트의 자랑인 케니 번스! 두 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주역이시지. 당신 같은 멍청이하고는 비교도 안 된다고!”

알려준 건 고맙지만, 이혁은 자기가 왜 이런 모욕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는 갑작스레 낯선 환경에 떨어져 약간 소심해진 상태였다. 그러나 분노는 차츰 쌓이고 있었다.

그가 지금까지 참은 것은 화를 낼 줄 몰라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이혁의 성격은 다혈질에 가까웠다. 원래는 ‘성격이 더럽다’는 말을 수시로 듣고 살았던 이혁이었던 것이다.

술집의 사람들은 크게 웃으며 마치 구호처럼 멍청이란 말을 계속해서 외치기 시작했다. 조롱과 놀림 속에서 이혁의 표정은 전혀 변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만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났을 뿐이다.

그리고는 처음 멍청이라는 말을 꺼냈던 그 사람에게 스카치위스키를 뿌렸다.

“이 미친…….”

그가 주춤주춤 일어나 이혁에게 다가왔다. 남자가 주먹을 들자 이혁은 술잔을 바닥에 던졌다.

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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