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지현이 돌아왔을 때, 원래 자리는 텅 비어 있었고 테이블 위의 식기도 서버가 치워간 뒤였다.
그냥 이렇게 가버린 건가?
아파하고, 울고, 괴로워하며, 여지현은 지금의 상황을 어떤 태도로 마주해야 할지 몰랐다.
"왜 너만 있어? 진훈은?"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양동준이었다. 소진훈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여지현은 그와 그리 친하지 않았다. 결혼했을 당시, 소진훈이 몇 번 만나게 해줬고, 그들의 결혼 사실도 이 몇 명만 알고 있었다.
"그는 김시윤과 먼저 갔어."
"이건 그가 너한테 전해달라고 한 거야."
양동준이 그녀에게 서류 하나를 건넸다.
여지현은 한 번 훑어봤다. 임신 검사 결과였고, 위에는 그녀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보아하니 소진훈은 정말로 그녀의 임신을 믿지 않았고, 차라리 가짜 검사 결과를 만들게 하면서도 그녀와 병원에 가지는 않았다.
"고마워."
양동준은 미간을 찌푸렸다. "너희 도대체 뭐 하는 거야?"
"우리 이혼하기로 했어." 여지현은 검사 결과를 손에 꼭 쥐며 말했지만, 마음은 말할 수 없이 괴로웠다.
"이혼? 김시윤 때문에?"
"응."
"그가 이혼하자고 하니까 너는 그냥 동의했어?"
여지현은 씁쓸하게 말했다. "아니면 뭘 어떻게 해? 크게 싸우고 나서 비참하게 끝내?"
그녀는 소진훈의 성격을 너무 잘 알았다. 난리를 칠수록 그녀에게 불리해질 뿐이었다. 차라리 무뢰배처럼 그에게 설명을 요구하기보다는 좋게 헤어지고 서로에게 체면을 남겨주는 게 나았다.
"여지현, 너 바보 아니야? 너랑 진훈이 부부고, 김시윤은 그냥 제삼자일 뿐인데. 네가 이혼에 동의하지 않으면 그녀는 감히 공공연하게 진훈을 꼬시지 못할 텐데."
여지현은 놀라서 그를 바라봤다. 그가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
양동준은 설명했다. "나는 그저 김시윤이 진훈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할 뿐이야."
"어울리는지 아닌지는 내가 결정할 수 없고, 네가 결정할 수도 없어. 당사자들만이 그럴 자격이 있어."
"네가 왜 이렇게 나약해? 자신의 결혼도 지켜내지 못하다니!" 양동준은 이를 악물고 분노하며 그녀를 책망했다.
여지현은 반박하지 않고 조용히 받아들였다. 맞아, 그녀는 그렇게 나약했다. 제삼자가 뻔뻔하게 그녀의 결혼에 끼어들었는데도 불만 한 마디 말하지 못했다. 그저 그것이 남편이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분위기가 경직된 가운데, 소진훈의 목소리가 옆에서 들려왔다. "너희 뭘 얘기하고 있어?"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검사 결과 전하러 왔다가 가는 길이야." 양동준은 굳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떠났다.
"수고했어, 다음에 같이 식사하자."
"시간 되면 보자."
소진훈은 여지현을 바라봤고, 그 심판하는 눈빛에 여지현은 감히 그와 눈을 마주칠 수 없었다. 그녀는 어색하게 검사 결과를 손에 쥐고 남자가 말을 꺼내길 기다렸다.
"메시지 보냈는데 왜 답장 안 했어?"
"못 봤어."
소진훈은 그녀를 살펴보며 세세한 것 하나 놓치지 않으려 했다. 그녀에게서 뭔가를 읽으려고 했다. 이 여자는 그의 앞에서 항상 이렇게 주눅 들어 있었다. 잠시 보다가 그는 의욕을 잃었다. "됐어, 가자."
주차장에 도착해서 소진훈은 차 앞에 멈춰 서서 방금 전 장면을 떠올렸다. 여지현은 가련했고, 양동준은 안타까워하는 표정이었다. 그가 몇 초만 늦게 왔더라면, 이 둘은 아마도 서로 껴안고 속마음을 털어놓았을 것이다.
생각할수록 짜증이 났고, 마음속에 이유 모를 분노가 일어났다.
"진훈아, 우리 가야 해." 김시윤이 상기시켰다.
소진훈은 갑자기 고개를 돌렸고, 날카로운 눈빛에 김시윤은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진훈아, 무슨 일이야?"
"아무것도 아니야. 가자."
소진훈은 차 문을 열고 앉았다.
가는 길 내내 세 사람은 대화하지 않았다.
차는 먼저 김시윤이 사는 아파트 앞에 멈췄다.
김시윤은 소진훈과 헤어지기 아쉬워 그의 팔을 잡고 애교를 부렸다. "진훈아, 올라가서 같이 있자."
소진훈은 여전히 아까 있었던 일로 신경이 쓰였고, 그 장면을 떠올리니 이유 없는 위기감이 들었다.
여지현, 정말 계산적이군. 아직 이혼도 안 했는데 벌써 다음 상대를 찾다니, 게다가 내 형제를 고르다니.
정말로 돈을 위해서라면 선을 넘는군.
"진훈아..." 김시윤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가자."
소진훈은 안전벨트를 풀고 문을 열어 내린 뒤, 문을 세게 닫아 감정을 발산했다.
"진훈아, 너 정말 좋아." 김시윤은 밝게 웃으며 그의 팔을 끼고 아파트로 들어갔다.
여지현은 완전히 무시당했다. 그녀는 따라가지 않고 어색하게 차 안에 앉아 있었다. 손바닥에 세밀한 땀이 배어 나왔고, 머릿속에선 통제할 수 없이 생각이 흐트러졌다.
그들은 방 안에서 더 친밀한 일을 할까? 포옹, 키스, 심지어는...
그녀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다.
생각할수록 마음이 아팠다.
시간이 한 방울씩 흘러갔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그녀는 현실로 돌아왔다.
소진훈이 차에 앉았고, 여지현은 몸을 옆으로 돌려 그를 봤다. 그의 옷은 아까보다 좀 더 흐트러져 있었지만, 그 외엔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
여지현은 입술을 깨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가 출발해서 계속 길을 달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다시 멈췄다.
집에 도착했다.
여지현은 안전벨트를 풀고 급히 차에서 내렸다.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소진훈이 화가 났다는 것을. 빨리 가지 않으면 그 화가 자신에게 향할 것이 분명했다.
소진훈이 그녀의 길을 막아섰다. "네가 내게 설명할 게 없어?"
"뭐가?" 여지현은 이해하지 못했다.
설명? 그녀가 무엇을 설명해야 한다는 거지?
소진훈은 손을 뒤로 돌려 그녀를 차에 눌렀다. "여지현, 네가 이렇게 세속적인 줄 전에는 몰랐어. 우리가 아직 이혼도 안 했는데 벌써 다음 후견인을 찾다니."
"아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이해가 안 돼."
여지현은 필사적으로 몸부림쳤지만, 남녀 간의 힘의 차이로 인해 그녀의 저항은 소진훈을 더욱 자극할 뿐이었다.
"여지현, 내가 말했잖아. 내 선을 넘지 말라고. 우리가 이혼하지 않는 한 넌 여전히 내 아내야. 밖의 남자들과 눈을 맞추지 마, 특히 내 형제들과는."
"네가 나를 네 아내라고 아직 기억하고 있네? 그런데 날 데리고 김시윤이랑 쇼핑하고 데이트하는 건 또 무슨 의미야? 너희가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게 보여주고 싶었던 거야?"
여지현은 분노로 정신이 흐려져 한순간 말을 고르지 못했다. 말이 나오자마자 후회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기에 그저 억지로 말을 이어갔다. "소진훈, 나도 사람이야. 나도 아파. 당초에 나와 결혼하자고 한 건 당신이었잖아. 왜..."
"입 닥쳐! 너는 시윤을 언급할 자격이 없어." 아픈 곳을 건드리자 소진훈이 그녀의 말을 사납게 잘랐다. "너 때문이 아니었다면, 시윤이가 어떻게 이렇게 많은 고난을 겪었겠어. 너는 비열한 수단으로 우리를 갈라놓았으니 오늘이 올 줄 알았어야 했어."
"나는 그런 적 없어!" 여지현은 변명했다.
"변명하지 마. 내가 경고했잖아. 얌전히 있으면 모두에게 좋을 거라고."
여지현은 절망적으로 눈을 감았다. 아무리 설명해도 소진훈은 그녀를 믿지 않을 것이다. "손 놔. 날 놓아줘."
"왜? 우리가 아직 이혼하지 않았는데 벌써 누구를 위해 몸을 지키려는 거야?"
소진훈은 그녀의 말을 듣기는커녕 오히려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감싸고 그녀를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겼다. "잊지 마, 우리는 아직 부부야. 무엇을 하든 합법적이야. 심지어... 잠자리를 함께해도."
그녀를 산산이 찢어 삼킬 듯한 그의 표정에, 여지현은 마음 깊은 곳에서 공포를 느꼈다.
"제발... 날 놓아줘..."
눈물이 마침내 흘러내렸고, 여지현은 거의 애원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녀의 눈물을 보자 소진훈의 마음이 세게 찔렸고, 황급히 손을 놓고 돌아섰다.
여지현은 바닥에 앉아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하루 종일 억눌렀던 감정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모든 서러움이 눈물로 변했다.
이미 옛 연인을 찾았으면서 왜 그녀를 이렇게 모욕하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