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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악인(惡人)을 위한 게임
낡은 방 안 흐릿한 등불이 작고 여윈 몸을 비추었다.
은희는 이미 상할 대로 상해 곰팡이까지 핀 밥덩이를 고사리 손에 쥔 채 연신 군침을 삼키고 있었다.
“아니야, 오라버니와 나눠 먹어야지!”
아이는 강하게 밀려오는 허기를 애써 참으며 밥덩이를 그릇에 돌려놓았다. 그리고는 초라한 나무 침상에 누운 소년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은희의 두 눈이 붉게 물드는가 싶더니, 이내 눈가에 물기가 촉촉이 어렸다.
“오라버니, 꼭 일어나야 해. 은희가 아무 것도 못하고 울기만 해서 미안해……. 끄흑……”
그러나 은희는 말처럼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오늘 아이는 약방에서 약을 훔쳐보려다 주인에게 잡혀, 어머니의 유품인 팔찌를 빼앗겨 버렸고, 때문에 장에 갔음에도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참을 울던 은희는 눈가의 물기를 닦아내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훌쩍, 훌쩍. 울면 더 배고파.”
가난 때문에 마음대로 울 수도 없는 가여운 아이는 아궁이가 있는 밖으로 나갔다.
쌀독 뚜껑을 여니 남아 있는 쌀알은 겨우 몇 알. 그러나 은희는 그 쌀알들을 조심스럽게 모아 불을 지피고 밥을 하기 시작했다.
아이는 겨우 일곱 살이었지만, 가난한 집 자식들은 어린 나이에 철이 들기 마련이었다.
습한 장작은 쉬이 불이 붙지 않았고, 그녀의 하얗고 뽀얀 얼굴은 불을 지피느라 이미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그렇게 용을 쓰고서야, 죽도 아닌 미음을 얻었다.
-후릅
바람만 겨우 막아주는 방으로 돌아온 은희는 미음을 한 모금 입 안으로 흘려 넣다가 눈가가 또 빨개졌다.
또르르 떨어진 눈물이 그녀의 입술을 적셨다.
그 때, 줄곧 누워만 있던 소년의 몸이 일순 움직였다.
“어……!”
놀란 은희가 미음 그릇을 내던지고, 누워있는 소년의 곁으로 한달음에 달려갔다.
“이신 오라버니! 오라버니, 괜찮은 거야? 제발 괜찮다고 해줘! 은희 너무 무서웠단 말이야. 엄니도 아부지도 갔는데, 이신 오라버니도 그렇게 되는 건 아닐까 얼마나 무서웠는데……!”
* * *
어린 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신이 감겨 있던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렸을 때, 그의 머릿속은 아직 전생의 기억으로 가득 차 있었다.
전생의 그는 기계제조업 관련 기업의 중견관리자로 금수저는 아니었지만 연봉도 상당하고, 밑으로는 몇 백 명의 부하직원을 둔 사람이었다.
아직 서른도 되지 않은 나이에 엄청난 것을 이룬 것이었다.
일명 ‘능력자’로 불리던 그는 버스를 타고 지방을 여행하던 중 세 명의 강도와 마주쳤다.
버스를 강탈하기 위해 올라탄 세 명의 강도는 승객들의 돈을 빼앗는 것도 모자라 그 중 한 명을 겁탈하려 들었고, 버스 안에 있던 서른 명이 넘는 장정 중 오직 그만이 나서서 강도와 실랑이를 벌였다.
실랑이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강도가 꺼내든 칼에 복부를 맞은 그가 피를 흘리며 쓰러졌기 때문이었다.
그가 피로 축축이 물들어 가는 배를 움켜잡고, 쓰러져 사경을 헤매는 동안 그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그에 의해 구사일생한 그 여자까지도…….
이신은 숨이 멎어가는 그 순간, 두 눈앞의 흥건한 핏물과 자신을 외면하는 사람들을 보며 몸과 함께 마음까지 얼어붙고 말았다.
허나, 자신을 위해 엉엉 울고 있는 어린 누이를 보고 있자니, 서늘했던 마음도 점차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사실 그는 삼 일 전에 의식을 회복했었다.
다만 이곳 세계의 기억에 적응하고 몸을 가눌 때까지 시간이 필요했을 뿐이었고, 그가 자리를 털고 일어날 때까지 이 일곱 살짜리 여자 아이는 자신을 아주 정성스레 돌보아 주었다.
‘이 세계에서도 내 이름은 ‘소이신’이군.’
이신은 의식을 회복하며 들었던 은희의 말들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밀려드는 이 세계의 기억들을 토대로 자신이 누구인지 이미 알고 있는 상태였다.
이신은 대주(大周), 주나라 상녕부(常宁府)에 위치한 삼방사회(三幇四會) 중 비응방(飛鷹幇)의 방도()였고, 부모를 잃고 일곱 살짜리 누이 은희와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흘 전, 비응방(飛鷹幇)의 오랜 적수인 청죽방(靑竹幇)과의 분쟁 중, 이신은 같은 편의 함정에 빠져 중상을 입어 사망했고, 그 때 이 세계의 이신의 몸으로 넘어온 것이었다.
아직도 대성통곡을 하고 있는 은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이신. 그의 기억에 있는 인형 같은 아이는 온데간데없고, 피골이 상접해 있는 불쌍한 아이만 그곳에 있었다.
이신은 마음이 바늘로 찌르는 듯 아파왔다.
“괜찮아, 은희야. 오라버니 너 두고 어디 안 가.”
“오라버니!”
이신의 손길을 느낀 은희가 눈물을 손등으로 대충 훔치고는 곰팡이가 핀 밥덩이를 허겁지겁 들고 와 자랑스레 내밀었다.
“오라버니, 이서 드셔요. 내가 특별히 남겨둔 거야.”
“착하네, 우리 은희…….”
그는 다시 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밥을 씹어 삼켰다.
역한 냄새가 나고, 씹기 어려울 정도로 딱딱했지만, 피골이 상접한 이신의 육체에 약간의 힘이라도 불어 넣기 위해선 이 방법밖엔 없었다.
오라버니가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며, 연신 침을 삼키던 은희는 곧 그의 품에 안겨 까무룩 잠이 들어버렸다.
며칠 동안이나 홀로 병자를 돌보는 것은 일곱 살 아이가 거뜬히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잠이든 그녀를 안아 침상에 눕힌 이신이 담담히 냉소를 지었다.
“전생엔 사람을 구하려다 죽고, 이 생엔 믿었던 방파 형제들에게 배신당해 죽었구나. 선(善)은 그 명이 짧고 악(惡)은 천 년을 누리니, 이제 나도 최고의 악인이 되어 남이 아닌 나를 위해 살겠다.”
쿵!
갑자기 이신의 머릿속에 진동이 울렸다.
- <최강의 악인> 시스템이 정식으로 가동됩니다.
로딩 중. 10%, 30%, 70%, 100%.
로딩 완료.
- 1 번째 계정. 소이신 님, 안녕하세요. <최강의 악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주변이 갑자기 어두워졌고, 기계음 같이 감정 없는 목소리가 어디선가 흘러 나왔다.
이신은 당황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최강의 악인>? 내가 생각하는 <최강의 악인>이 맞아? 내가 어떻게 첫 번째 사용자로 선택된 거야?”
놀라긴 했지만 전혀 낯선 것은 아니었다. 이 게임은 전생에서 꽤나 유명한 게임이었기 때문이었다.
또 한 번 감정 없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 소이신 님의 몸 안에는 두 개의 시스템이 존재했고, 그 중 하나에 부합하여 시스템이 로딩 되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뭔데?”
- <최강의 영웅> 시스템입니다.
그 소리를 들은 이신은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 내가 악하게 살겠다고 맹세해서 영웅이 아닌 악인이 된 거군? 됐다, 차라리 악인이 좋아. 좋은 사람 돼보겠다고 괜히 호구 짓만 하다 이 꼴이 난거니, 이번엔 나쁜 놈으로 오래오래 천수를 누려보지 뭐.”
이신은 빠르게 이 상황을 받아들인 듯 했다.
“시스템, <최강의 악인>은 대체 뭐하는 거야?”
이신이 묻자 눈앞에 빛이 나며, 총 여섯 가지 옵션이 적힌 추첨용 원판이 나타났다.
옵션은 공법, 1회성소모품, 단약, 병기, 잡동사니 그리고 빈칸.
시스템은 옵션을 하나씩 빛내며 설명을 시작했다.
- <최강의 악인> 시스템은 전설로 전해져 오는 무협세계의 악인들이 보유했던 모든 것을 저장하고 있습니다.
- ‘공법’을 뽑게 되면 랜덤으로 악인이 나타나 몸에 지니고 있던 한 가지 혹은 여러 가지의 공법과 무공을 제공합니다. 소이신 님은 제공받으신 기본 숙련도 5%의 공법을 수련해 숙련도를 높일 수 있습니다.
- ‘1회성소모품’ 역시 마찬가지지만 기본 숙련도 100%의 공법을 단 1회 사용 가능함으로 수련을 통해 숙련도를 높일 수 없습니다.
- ‘단약’은 각종 단약류를, ‘병기’는 각종 병기류를, ‘잡동사니’는 무협 세계관 내의 각종 물품을 랜덤으로 제공하며, 빈 칸을 뽑으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합니다.
- 주의할 점은 최강의 악당 시스템 내의 모든 물품은 성급에 따라 분배 됩니다. 0.5성부터 5성급까지 총 10 등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초급 추첨에서는 2.5성급 이하의 물품만 제공됩니다.
“랜덤 추첨인데 등급에 따라 준다고?”
시스템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 추첨은 초급, 중급, 고급의 세 가지 등급으로 구분되며 초급은 2.5 성 이하의 물품을 제공합니다. 소이신 님은 매일 1회 추첨의 기회가 있습니다.
- 중급 추첨은 4성급 이하의 모든 물품을 대상으로 하며 불필요한 옵션 유형을 1개 배제할 수 있습니다. 10번의 초급 추첨을 1 번의 중급 추첨 기회와 교환 가능합니다.
- 고급 추첨은 3성급 이상의 모든 물품을 대상으로 하며, 옵션 1개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10번의 중급 추첨을 1번의 고급 추첨 기회와 교환 가능합니다.
이신이 미간을 좁혔다.
“고급 추첨을 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겠네?”
최강의 악인 시스템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았고, 이신은 시스템의 설명을 듣자마자 무엇이 중요한 지 알아낼 수 있었다.
초급 추첨은 순전히 운이라서 항목이 여섯 가지에 꽝을 뽑을 가능성도 적지 않았고, 중급 추첨은 상한선은 있지만 하한선은 없어서 0.5성급 결과물을 얻을 수도 있었다.
‘이런 식이면 고급 추첨만 확실한 성과를 보장하는 것이겠네.’
이신이 천천히 생각을 하는 동안 시스템은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 소이신 님은 퀘스트를 통하여 경험치(악인 수치)를 쌓을 수 있습니다. 경험치 10점으로 초급 추첨 1회를 진행할 수 있으며, 100점으로는 중급 추첨을, 1000점으로는 고급 추첨을 진행합니다. 나머지 경험치는 태환상성(兌換商城) 내에서 물품을 구매하는데 이용할 수 있습니다.
“태환상성? 그게 뭐야? 어디 있는 건데?”
- 게임에 필요한 물품을 구매하는 곳으로, 메인퀘스트 완료 전에는 개방되지 않습니다.
“그 메인퀘스트는 뭔데?”
- 퀘스트는 시스템에 의해 랜덤 생성되고, 당시 상황에 따라 난이도가 상이합니다.
애매모호한 대답은 불길한 예감을 들게 한다.
‘시스템 맘대로 하겠다는 거네, 대체 뭘까?’
이신의 미간은 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 첫 번째 로딩을 축하하며 시스템은 별도의 중급 추첨 기회를 1회 제공하고 있습니다. 현재 초급 추첨 기회 1회, 중급 추첨 기회 1회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추첨을 진행 하시겠습니까?
“해야지, 당연히. 중급 추첨으로.”
타라라락-
이신의 말에 맞춰 추첨 룰렛이 돌아가기 시작하더니, 룰렛의 화살표는 ‘공법’에 멈춰 섰다.
쿵!
그 즉시 날렵한 얼굴에는 세 줄기 도흔(刀痕)을 지닌 장신의 남자가 화면에 나타났다. 왼손에 쥐어진 검과 그의 잿빛 시선은 보기만 해도 오금을 저리게 하는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 축하드립니다. 인물 ‘김무명’을 뽑았습니다. 공법서 <김무명쾌검>을 소장하고 있고, 공법 등급은 2.5 성입니다.
“겨우 2.5성? 김무명이 너무 과소평과 되고 있는 거 아냐?”
김무명은 잘 알려진 무협소설의 등장인물로, 나름 무협지를 많이 읽었다고 하는 사람들은 물론 무협지 광인 이신 또한 김무명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 인물은 금전성 상관금홍 휘하의 제일 고수였는데, 일찍이 <병기보(兵器譜)> 제4대 강자인 철검(鐵劍) 곽송양을 격살했고, 쾌검으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기이하고 악랄한 손속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런 엄청난 고수가 겨우 2.5 성의 평가를 받아, 중급 정도에 속한다면 5 성의 인물들은 아마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어마어마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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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모든 내용에 대한 편집권은 계약에 의해 KOCM에 있으므로 무단복제, 수정 및 배포행위를 금지합니다. 본 소설은 중국 원작소설(最强反派系统)을 한국작가가 번역, 편집한 작품으로 한국과 중국 치덴사이트에서 동시에 서비스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