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의 뜨거운 물에서 수증기가 올라오며, 안개가 점차 거울 전체로 기어 올라가 그녀의 정교한 눈썹과 눈을 곧 뒤덮었다.
흐릿한 수증기를 통해, 기서는 거울 속 그 사람의 눈꼬리에 맺힌 것이 물방울인지 눈물인지 점차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물이 넘쳐나 바닥으로 떨어졌다.
매우 가볍고, 매우 미약했다.
그러나 기서는 들었다.
깊숙이 숨겨진 기억이 수문이 열린 조수처럼 밀려 나왔다.
관 속에 누워있는 아버지의 모습...
그녀 자신이 낙태 수술 동의서에 서명하는 모습...
수술이 끝난 지 삼일 째 되던 날, 그녀가 육진천에게서 받은 이혼 합의서...
북성의 겨울은 정말 너무 춥다, 올해 겨울은 여기 머물고 싶지 않았다.
기서는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질식 직전 마지막으로 발하는 구조 신호처럼 말했다. "하지만 하민아, 너무 지쳤어."
전화 너머로 몇 초간 침묵이 흘렀다.
이번에 고하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다만 온화하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좋아, 이혼해."
이 결혼이 끝나길 바라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이 결혼의 시작이 실수였다면...
기서는 전화를 끊고, 천천히 눈을 감았다. 생각은 공허하고, 온몸은 수증기에 휩싸여 있었다.
세가 미디어.
로걸은 조심스럽게 회의실 문을 닫고 나와 숨을 돌릴 겨를도 없이, 비서 문에게 한쪽으로 끌려갔다.
"로특조님, 육 대표의 회의는 얼마나 더 걸릴까요? 11시에 해외와 화상 회의가 있는데, 이제 15분밖에 안 남았어요."
문은 물어보면서도 살짝 발끝을 세워 닫힌 회의실 문을 훔쳐보았다.
"로특조님, 회의가 언제 끝날지 조금만 알려주실 수 없나요? 다들 오전 내내 전전긍긍하면서 화장실도 못 가고 있어요, 육 대표가 불러들일까 봐 두려워서요."
로걸은 넥타이를 느슨하게 하며 무력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육 대표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겠어, 아침부터 시작해서 마케팅부, 법무부, 디자인부, 홍보부, 심지어 인사부까지 모두 피해가지 못했어."
문은 동조했다. "맞아요! 이건 완전 암흑의 3시간 회의예요. 그런데 로특조님은 왜 지금 나오셨어요?"
로걸은 걸어가면서 뒷손을 들어 흔들며 말했다. "육 대표가 아래층 아이들의 말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회의 진행을 방해한다며 처리해오라고 하셨어."
로걸이 급히 떠나는 뒷모습을 보며, 문은 창가로 가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여기는 28층인데 육 대표가 아래층 아이들 소리까지 들린다고?
회의실 안에서는 세가 미디어의 모든 부서 고위 임원들이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채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이곳으로 불려왔는데, 이제 거의 3시간이 지나가고 있었다.
디자인부의 엽 부장이 정말 참을 수 없어서, 떨리는 몸으로 허리를 굽히며 일어섰다. "육 대표님, 제가 화장실을 잠시 다녀와도 될까요?"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다른 부서 부장들이 그에게 경외의 눈길을 보냈고, 엽 부장은 괴로워했다.
육진천은 그저 담담하게 힐끗 보고는, 구부린 손가락으로 테이블 위를 가볍게 두드렸다.
심장박동이 빨라지고, 그 소리가 점점 커져서 마치 귓가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엽 부장은 방광뿐만 아니라 가슴도 곧 터질 것 같았고, 심장이 다음 순간 뛰쳐나올 것 같았다.
참석한 모든 사람들은 육진천의 이런 모습이 폭풍우 전의 고요함이라고 여겼다.
엽 부장이 체념하고 눈을 감았는데, 그가 자리에 앉으려는 순간 육진천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회의실을 한번 훑어보고, 희로애락을 분간할 수 없는 목소리로 한 마디 했다. "산회!"
육진천이 일어나 회의실을 나갈 때까지도, 모두들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를 보고 엽 부장은 서둘러 화장실로 달려갔다. 다음 순간 육진천이 마음을 바꾸고 돌아올까 봐 두려웠다.
로걸이 사무실로 들어갔을 때, 육 대표가 통창 앞에 서 있는 모습을 보았다.
그는 말을 정리한 후 걸어 다가가며 말했다. "육 대표님, 제가 방금 아래층에 가봤는데, 이제 아이들의 시끄러운 소리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음." 육진천은 담담하게 대답했고, 표정은 평온했다. "나가."
"네, 육 대표님."
로걸은 마음속으로 스스로에게 엄지를 치켜세웠다.
힘내! 로걸! 넌 최고의 대표 특별보조야!
......
기서는 3년 전 미술대를 졸업하고 바로 '만물생' 작업실에 취직했다. 그녀의 직업은 벽화 디자이너였다.
작업실은 출퇴근 시간이 비교적 유연해서 반드시 앉아 있을 필요는 없었다.
그녀는 상사에게 휴가를 신청한 후 아침에 비취어부를 나와 바로 세가로 왔다.
세가 미디어, 지금은 국내 미디어 분야의 선두 주자다.
2년 전 한 재경 뉴스가 나온 후에야 사람들은 그 배후에 육씨 그룹의 상속자 육진천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기서는 이 사건이 막 보도되었을 때, 육팽이 크게 화를 내며 육진천을 규율을 어기고 반항한다고 꾸짖었던 것을 기억했다.
육씨 그룹은 사업 영역이 광범위했는데, 그중에서도 상업 부동산이 주력이었다. 만태, 운달, 보룡, 화홍대월성, 룡호 홀딩스 등이 모두 그 산하 기업이었다.
모든 사람들의 눈에는, 육진천이 다른 부유한 집안의 자제들처럼 졸업 후 자기 집안의 회사에 들어가 정해진 길을 걸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육진천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육씨 그룹을 이어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육씨 그룹이 한 번도 발을 들여놓지 않은 길을 개척했다.
당시 그 뉴스 보도가 나온 후, 많은 사람들이 육진천의 실패를 기대하며 구경거리로 삼았다. 모두 육씨 도련님의 일시적인 흥미에 불과하다고 여기며, 그가 흥미를 잃고 포기할 것을 기다렸다.
그러나 1년이 지난 지금, 세가 미디어는 국내 미디어 회사의 선두 주자가 되었다.
육진천은 1년의 시간 동안, 세가 미디어의 이름을 북성에 울려 퍼지게 했고, 원래 구경거리를 기대했던 사람들은 금세 표정을 바꿔 육진천을 보기 드문 비즈니스 천재라고 칭찬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 육진천은 북성인들의 눈에 더 이상 육씨 그룹의 후계자가 아니라, 세가 미디어의 육 대표로 알려졌다.
비취어부에서 세가까지는 멀지 않아서, 기서는 차로 10여 분 만에 빌딩 아래에 도착했다.
북성에서 가장 번화한 상업 지구, 고층 빌딩들 사이에서 세가 미디어는 가장 눈에 띄는 별과 같았다.
28층의 높은 건물이 마치 창공을 향해 직접 겨누는 예리한 검과 같았고, 광고판은 매 분마다 변하며 오가는 행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유리 벽면은 떠오르는 태양의 여명을 반사하며, 북성의 번영함을 과시하고 있었다.
기서는 1층에 걸어 들어가자, 안내 데스크의 직원은 젊은 여성이었는데, 그녀를 보고 직업적인 미소를 지었다. "안녕하세요, 예약이 있으신가요? 제가 확인해드리겠습니다."
기서가 말했다. "예약은 없어요, 육진천을 찾고 있어요."
"네..... 누구요? 육......육 대표님을요?"
얼굴의 미소가 확연히 굳어지는 것을 살짝 느끼며, 마우스를 쥔 손이 살짝 떨렸다.
눈앞의 여자는 흰색 벨벳 긴 원피스에 연한 살구색 코트를 입고 있었고, 머리는 느슨하게 하나로 묶어 올렸으며, 몇 가닥의 잔머리가 어깨에 떨어졌다. 막 떠오른 햇빛이 마침 그녀 위에 내리쬐어 마치 빛의 층이 입혀진 것처럼 보였고, 따스하면서도 매력적이었다.
호기심을 잠시 억누르며, 여자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차분하게 대답했다. "죄송합니다만, 육 대표님의 예약은 저희가 확인할 권한이 없습니다. 혹시 육 대표님이나 로특조님의 연락처가 있으신가요?"
기서는 이 질문에 당황했다.
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연락처 목록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없었다.
위챗 친구 목록을 열어 검색했다.
없었다.
그제서야 3년 전에 육진천의 연락처를 삭제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기서는 고개를 들고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