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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필드의 마법사 / Chapter 4: 필드의 마법사

บท 4: 필드의 마법사

필드의 마법사

제4화

4화. 로니의 인생

이혁은 길가에 놓인 벤치에 앉았다. 그리곤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감독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하지만 딱히 이렇다 할 방법을 찾을 수는 없었다. 그는 축구 전문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어떻게 팀을 훈련시켜야 할지, 무슨 방법을 써야 팀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지 알지 못했다.

그런데 준비할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오늘은 휴일이지만, 당장 내일부터 훈련이 시작될 것이다. 나흘 뒤에는 FA컵 경기가 있었다. 상대는 웨스트햄이었다.

현재 노팅엄 포레스트는 3연패를 기록하고 있으며 감독은 방송에 나올 정도로 커다란 망신을 당했기 때문에 팀의 사기는 바닥으로 떨어져 있었다. 웨스트햄도 현재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노팅엄 포레스트보다는 상황이 좋은 편이었다.

이혁은 쓰게 웃었다.

“정말 암울하군…….”

짜증이 솟구쳤다. 이혁은 길모퉁이에 PUB이라고 적힌 가게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잠시 모든 걱정을 미루고 그곳에서 한잔하기로 결심했다.

“여기는 그나마 술집이 많다는 게 위로가 되는군.”

그는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죄송합니다만, 지금은 영업시간이 아닙니다. 팻말이 안 걸려 있었나 보군요.”

문이 열리는 소리에 카운터 뒤에서 컵을 닦고 있던 중년 남자가 그를 보고 말했다. 하지만 들어온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하자 그는 약간 놀란 듯했다. 이혁 또한 놀랐다. 왜냐하면 이 가게 주인은 어젯밤 자신에게 술을 사주었던 케니 번스였던 것이다.

그는 진짜 이 가게가 어제 그 가게인 줄 몰랐다. 이혁은 당황하며 어쩔 줄을 몰랐다.

“아……. 음, 그럼 다른 가게로 가야겠군요.”

“시간 낭비일걸요. 이 시간에 문을 여는 술집은 없습니다.”

이혁은 멋쩍은 듯 말했다.

“이런 데를 별로 와 본 적이 없어서…….”

“별로가 아니라 이제 두 번 아닌가요? 예전의 당신은 마치 신부님 같았어요. 아, 혹시 기분이 상하시진……?”

이혁은 고개를 저었다. 자신은 로니가 아니기 때문에 과거에 그가 어떤 평가를 받았건 아무 상관이 없었다. 오히려 로니에게 미안해야 할 건 그가 아니라 이혁 자신일지도 몰랐다.

번스는 카운터에서 걸어 나와 이혁에게 손짓했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긴 아쉽죠? 저도 심심하던 참이었으니 저하고 얘기나 나누시죠. 돈은 제가 내겠습니다.”

이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번스가 스카치위스키를 가지고 왔다. 아직 술집이 영업을 시작하기 전이라 번스는 불을 켜지 않았다. 셔터는 반쯤 내려져 있었고 그 사이로 자연광이 들어왔다.

번스는 유리잔 두 개를 가져온 뒤, 거기에 황금색 액체를 따랐다. 두 사람은 술을 마시며 이야기를 나눴다. 조용하고 어둑한 분위기라 대화하기 좋았다.

“어젯밤 전 정말 놀랐습니다.”

잔이 비자 번스는 바로 술을 채워주었다.

“네?”

이미 독한 위스키를 다섯 잔이나 마셨다. 이혁은 술고래였지만 이렇게 마시니 다소 취하는 것 같았다.

“여기에서 7년을 있었잖아요. 당신을 처음 봤을 때는 젊은 청년이었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감독님이 누군가와 싸우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어요. 좀 강박이 있긴 해도 성격이 온화하다고 생각했죠. 어제 그 사람들은 다들 너무 취한 상태라……. 맨 정신일 때 감독님을 만났다면 그런 식으로 행동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감독님이 그렇게 반응할 줄도 몰랐고… 감독님답지 않게 힘이 넘치더군요.”

이혁은 씁쓸하게 웃었다. 로니는 정말 착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당신 말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이혁은 일부러 얼굴을 찡그리며 뒤통수를 살짝 만졌다.

“기억이, 너무 많은 기억이 손실된 것 같아요.”

그는 계속 말했다.

“제가 어떻게 팀을 훈련 시켰는지도 기억이 안 나고. 선수들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어요. 당장 모레 경기가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이혁의 말에 번스는 이게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인지했다.

“그게 정말입니까?”

“네, 불행하게도…….”

이혁은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정말 큰일이네요. 데겔티 구단주는 이 상황을 알고 있습니까?”

“아직 말하지 않았어요.”

이혁은 고개를 저었다. 번스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는 고개를 들어 번스를 바라보았다.

“케니, 내가 예전에는 어떻게 팀을 훈련시켰는지 좀 알려줄 수 있나요?”

번스는 손바닥을 치며 대답했다.

“좋은 방법이네요. 그러다 보면 기억이 돌아올 수도 있고. 음, 잠시 생각 좀 해보겠습니다. 일단 감독님은 7년 전에 노팅엄 포레스트로 왔지요…….”

* * *

축구팬에게 있어 그들의 시간은 축구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과거를 회상할 때, 그때 뭘 했는지를 기억하기보다는 당시 어떤 경기가 있었는지, 결과가 어떻게 나왔는지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다.

이혁 역시 그랬다. 2003년이면 그가 아직 대학생일 때였다. 그로부터 7년을 거슬러 올라간 1996년, 이때 그는 정말 어렸다. 하지만 그 때 열렸던 유로 1996 대회에 대해서는 아직도 기억이 났다.

당시 개최지가 잉글랜드였다. 그는 몰래 밤을 새워가며 축구를 보고 용돈을 털어 스포츠 신문을 사서 읽곤 했다.

당시 한국에서는 인터넷 커뮤니티 따위가 아직 대중적으로 보급되지 않을 때여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루트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하지만 그런 열악한 환경도 이혁의 축구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막을 수는 없었다.

그는 그때 비로소 잉글랜드의 비운의 천재 폴 개스코인에 대해 알게 되었고 지네디 지단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는데, 그는 몇 년 뒤 유럽 최고의 선수가 되었다.

이혁에게 1996년은 그런 의미가 있었다. 평생을 같이 했던 축구라는 취미에 본격적으로 빠져들게 되었던 때였다.

그리고 지구의 반대편에서, 로니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었다. 이스트우드의 작은 도시에 살던 그는 막 고향을 떠나고 있었다. 그는 축구를 사랑하는 순수한 청년이었다. 축구에 대한 열정을 뺀다면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로니에게는 기회가 주어졌다.

1996년 여름, 잉글랜드는 축구 열풍에 휩싸여 있었다. 잉글랜드의 중부에 위치한 노팅엄에서도 역시 축구는 모든 이들의 관심사였다.

노팅엄 포레스트는 92/93시즌 강등의 아픔을 겪고 난 후, 다음 해 절치부심하여 승격하였고, 94/95시즌에는 리그에서 3등을 차지하여 UEFA 컵 진출권까지 따냈다.

로니는 바로 이때 노팅엄 포레스트로 들어온 것이었다. 한참 팀이 새로운 인력을 구할 때라 별 어려움 없이 일을 하게 될 수 있었다.

그에게 주어진 일은 훈련장 청소였다. 그는 고작 청소부였지만, 항상 감독과 코치진들이 어떤 일을 하는지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

그들이 선수들과 어떤 이야기를 하는지, 어떻게 대하는지 관찰하며 쉴 새 없이 생각하고 공부했다.

노팅엄 포레스트의 노력은 그러나 곧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UEFA 컵에서는 8강에 진출하긴 했지만, 바이에른 뮌헨에게 7:2로 참패하였고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해 9위로 시즌을 마감했다.

이때 로니는 그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인 폴 하트를 만났다. 그는 리즈 유나이티드의 유스팀에서 노팅엄 포레스트의 유스팀 감독으로 막 초빙되어 온 참이었다.

폴 하트는 유명한 감독이었다. 그는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수많은 유망주들을 양성해 냈다. 조나단 우드게이드, 앨런 스미스, 폴 로빈슨 등이 바로 그가 길러 낸 선수들이었다.

하트의 합류로 인해 로니의 인생 역시 완전히 바뀌어버렸다. 처음 노팅엄 포레스트에 온 하트는 믿을 만한 조수가 없었다. 그는 열심히 배우는 로니를 눈여겨보고는 그를 노팅엄 포레스트 유스팀의 네 명의 코치 중 한 사람으로 채용했다.

하트는 과묵하지만 열정적인 로니를 매우 좋아해서 어디를 가든지 그를 데리고 다녔다. 로니는 하트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폴 하트의 합류로 인해 유스팀의 수준은 더욱 높아졌다. 그는 1군 팀을 위해 우수한 선수들을 양성했으며 그 중 가장 뛰어났던 것은 저메인 제너스라는 선수였다.

당시 팀의 시즌 초 성적은 꽤 괜찮았다. 하지만 코치진 사이의 알력으로 인해 점차 패배가 많아졌고 최종적으로는 2부 리그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 후 노팅엄 포레스트는 현재의 구단주인 니콜 데겔티의 손으로 넘어갔다. 그는 현 감독인 바셋을 더 믿어보기로 하고 바셋 또한 그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1년 뒤, 노팅엄 포레스트는 다시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1년뿐이었다. 99/00시즌에서 노팅엄 포레스트는 다시 연패를 면치 못했고 바셋은 사직했다.

데겔티는 데이비드 플렛에게 감독의 자리를 넘겨줬지만 팀은 재기할 힘을 상실한 듯, 프리미어리그로 돌아가지 못했다.

2001년 여름, 잉글랜드의 축구협회는 플렛을 잉글랜드 유소년 대표팀의 감독으로 초빙했다. 데이비드 플렛은 노팅엄 포레스트의 감독직을 폴 하트에게 맡기고 떠났다. 그러자 하트는 자신이 일임하고 있던 유스팀의 감독 자리를 로니에게 넘겨주기로 했다. 그는 로니가 감독이 되기에 충분한 자질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다.

로니는 확실히 실력 있는 감독이었다. 그는 곧 몇 명의 훌륭한 선수들을 배출해냈다. 왼쪽 수비수를 담당하던 앤디 레이드, 주장을 맡았던 마이클 도슨 등이 그 예였다.

그는 하트처럼 훌륭한 감독이 되고 싶어했다. 보석 같은 재능이 있는 청소년들을 발굴하여 훌륭한 선수로 만드는 일은 그에게 큰 충족감을 가져다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평온한 생활은 3일 전, 모두 끝나고 말았다.

폴 하트는 매우 유능한 감독이었다. 데겔티는 하트가 팀을 이끌고 보다 높은 곳으로 올라갈 수 있을 것으로 믿었다. 그는 그래서 팀의 재건을 위해 은행에서 대출까지 받았다.

각종 매체에서는 이 팀의 앞날이 밝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팀의 불운은 아직 끝이 아니었다. 챔피언십의 중계를 맡은 ITV가 파산하고 만 것이다. 그로 인해 수많은 챔피언십 팀의 자금줄이 순식간에 끊기고 말았다.

노팅엄 포레스트는 시즌 초기에 투자한 돈이 가장 많은 팀이었고 경제적 타격은 그만큼 컸다. 그렇게 다시 한 시즌을 날리게 되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우수한 선수들을 대거 내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중에는 뛰어난 실력을 갖춘 저메인 제너스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역대 최고 연봉을 보장받고 뉴캐슬 유나이티드 팀으로 이적했다. 아끼던 선수를 떠나보내자 폴 하트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항상 힘이 넘치고 의욕이 충만했는데, 제너스가 소속팀을 옮기자 그런 모습이 다 사라져 버렸다.

팀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던 선수들이 모두 떠나자 남은 선수들의 사기는 바닥을 쳤다. 02/03시즌의 전반기, 노팅엄 포레스트는 중간 정도의 성적을 기록했다.

하지만 한때 빛나던 팀, 유럽 최고의 모습을 보여줬던 팀으로서, 중간 정도의 성적으로는 팬들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결국,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난 뒤, 폴 하트는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사직서를 내고 말았다. 하트는 떠나면서 감독 자리에 로니를 추천했다.

데겔티는 로니를 잘 알고 있었고 그에 대해 꽤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팀에서 7년이나 성실하게 일했고 2년간 유스팀을 맡으면서 성적도 좋은 편이었기 때문이다.

2002년 12월 29일, 노팅엄 포레스트는 유스팀 감독이었던 로니를 시즌 종료까지 1군 팀의 감독으로 발탁했다.

모든 매체와 축구팬들은 로니의 첫 번째 경기에 관심을 집중했다. 하지만 그는 첫 경기부터 이례적인 사고로 사람들의 비웃음을 샀으며 팀은 0:3으로 대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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