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풍러너 어쌔신
제8화
8화. 로그아웃
우현의 말은 설득력이 있긴 했지만 그녀는 우현이 정말 알고 말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숲을 가보긴 했을까? 가봤다 하더라도 어떻게 이렇게 정확하게 아는 것일까?
“퀘스트를 다 마쳤으니 전 이만 가볼게요. 오늘 같이 사냥한 거 정말 재밌었어요. 또 연락할게요.”
두 사람은 서로를 친구로 추가했다.
“그럼 갈게요. 또 봐요.”
서연이 손을 흔들며 헤엄쳐 떠났고 그녀의 모습이 점점 작아지더니 이내 사라지고 말았다.
그녀와 헤어지자 조금 쓸쓸했지만, 우현은 이내 마음을 정리하고 물거미를 잡는 데에만 몰두했다.
물거미들이 하나하나 우현의 단검에 쓰러졌다. 마침 시간을 보니 게임이 끝나기까지 3시간 밖에 안 남아 있었다.
그때 갑자기 우현의 채팅창이 켜졌다.
“안녕하세요, 저에요.”
우현에게 대화를 건넨 것은 스톤이었다.
“무슨 일이죠?”
“제 친구가 우현님하고 대화를 하고 싶다고 해서요.”
“지금 좀 바쁜데…….”
“전에 말했던 그거 말이에요. 무당귀신 던전 공략법! 200골드 지불하기로 했어요.”
“공략이 없으면 확실히 거긴 어려워요. 던전안에 울타리가 있는데 그쪽이 특히 어렵죠?”
그곳은 노하우를 알지 못하면 통과하기 힘든 곳이었다.
“어떻게 알았어요?”
이 말로 스톤은 우현을 더욱 신뢰하게 되었다.
“당연히 알고 있죠. 공략법을 알고 싶다면 제 창고로 골드를 보내세요.”
이 게임에서는 캐릭터 당 하나의 개인 창고를 배정받는다. 일종의 계좌와도 같은데 유저 간 송금도 가능하고 은행 이용하듯이 쓸 수 있었다.
“우선 가서 물어보겠습니다.”
스톤이 파티에서 의사결정권이 없는 것은 분명해 보였다. 잠시 후, 그가 메시지를 보냈다.
“친구에게 말했더니 먼저 100골드를 보내고 공략법이 효과가 있다면 추가로 100골드를 주는 방식이 어떠냐고 합니다.”
“그러죠, 뭐.”
우현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면 돈을 허공에 날리는 것과도 같다. 이 정도 요구라면 받아들일 만했다.
[스톤님이 당신의 개인 창고에 100골드를 전송하였습니다.]
“보냈습니다. 저기…….”
스톤의 메시지였다. 그는 우현이 먹고 튀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듯했다.
“그 울타리 쪽에는 항상 7마리의 무당귀신이 있어요. 여기서 괜히 전사가 먼저 갔다가는 다굴 맞고 죽으니까 절대 그래서는 안 되고요. 울타리 근처에 보면 큰 나무가 하나 있는데 거기 어쌔신을 배치하고 가장 왼쪽의 무당귀신을 쏘게 해요. 이건 절대 틀리면 안 돼요. 그러면 3마리를 유인할 수 있는데, 그것만 잘 처리하면 나머지 4마리는 쉬울 거예요. 그다음으로 조심해야 할 곳은 무당귀신의 제단이에요. 제사를 지내는 무당귀신이 있을 텐데, 여기서 섣불리 공격했다가는 제사장 귀신이 보스를 끌고 오니까 절대 건드리면 안 되고요. 이동하기를 기다려서 제단에서 멀어졌을 때, 방패전사를 투입해서 처치하게 해요. 그러면 보스를 단독으로 상대할 수 있고 그렇게만 된다면 클리어는 쉬울 거예요.”
“그게 다입니까?”
“네.”
우현은 잠깐 말하는 것으로 손쉽게 돈을 번 것이다. 하지만 이 정보는 무척 값어치가 높은 것이었다. 이대로만 하면 죽지 않고 던전을 클리어 할 수 있는데 죽을 때 깎이는 경험치는 돈을 주고도 못 사는 것이다.
* * *
캐롤성의 구석진 곳, 스무 명 가량의 유저들이 토론을 하고 있었다.
“그 사람이 거짓말하는 거예요. 돈만 날린 셈이죠, 뭐. 그가 어떻게 무당귀신 던전의 공략법을 알겠습니까?”
스톤이 반박했다.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어떻게 그렇게 상세한 정보까지 알겠습니까? 그의 말대로 하면 손해는 안 볼 것 같은데…….”
그는 우현을 믿었으나 그 이유를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고수가 아니고서는 풍길 수 없는 분위기, 그런 것이 우현에게 있었는데 그걸 말로 표현할 방법이 없다.
“스톤, 그게 무슨 말이야?”
옆에 있던 전사가 물었다. 그는 이 파티의 리더로 유저 네임은 반우였다. 스톤은 우현의 공략법을 그에게 전했다.
그의 말을 들은 프리스트가 파티원들에게 물었다.
“믿을 만 하다고 보십니까?”
“잘 모르겠습니다.”
파티원들은 모르겠다는 반응, 그들은 제사장도 보기 전에 죽었기 때문에 뭐라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반우가 말했다.
“우현이란 자가 무당귀신 던전을 클리어 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아.”
“그는 고수가 확실합니다. 저는 우현을 믿어요.”
스톤의 말에 반우는 결심한 듯 파티원들에게 알렸다.
“이 방법대로 한 번 해보자. 모두 준비해, 10분 뒤 출발한다.”
결정을 내렸으니 그의 말에 따라야 한다. 파티원들이 물었다.
“정말 가는 겁니까?”
“무당귀신 던전에 대해 그렇게까지 잘 아는 것을 보면 둘 중 하나이겠지. 공략법을 아는 것이거나 정말 교활한 사기꾼이거나. 그가 거짓을 말했다면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
* * *
우현은 여전히 물거미를 잡느라 정신없었지만 사냥 자체는 재미가 없었다.
물거미가 끼익! 하는 소리를 내며 죽어갔다. 그 소리를 듣고 근처에 있던 물거미들이 전부 몰려왔고 그 수는 여섯이나 되었다.
지금 우현은 꽤 지쳐 있어서 두 마리만 나타났다 하더라도 상대하기 벅찰 정도였다.
그는 재빨리 물속으로 들어갔다. 거미들은 수면 위에서 돌아다니며 우현을 찾고 있었다.
우현은 먼 곳으로 헤엄친 뒤, 고개를 내밀었다. 그런데 물거미들의 수는 아까보다 더 늘어나 있었다. 지금 올라가면 절대 살아남지 못 할 것이다.
수중호흡을 위해 인어 방울을 꺼내었고, 거기서 나온 빛으로 호수 바닥을 비추었다. 그런데 바닥에 금빛으로 빛나는 물체가 있는 게 보였다.
‘설마 보물은 아니겠지?’
그는 호수 바닥으로 깊숙이 헤엄쳐 들어갔다. 바닥에는 괴상한 돌덩어리들이 널려 있었다. 그 사이에서 갑자기 거대한 금색 뱀장어가 헤엄쳐 나와 우현의 옆을 지나갔다.
그는 깜짝 놀랐다. 곧 아까 본 빛이 이 뱀장어임을 깨닫게 되었다. 보통 뱀장어도 아니고 황금 전기뱀장어라는 녀석이었다.
굉장히 희귀한 몬스터로, 온순한 성격이라 먼저 유저를 공격하는 일은 없었고 공격당해야만 반격을 했다. 이 몬스터를 잡으면 실버급의 좋은 장비가 나온다.
황금 전기뱀장어 : 레벨 0, HP(생명력) 80/80
레벨 0짜리를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황금 전기뱀장어는 특별히 정해진 레벨이 없어 어떤 것은 레벨이 20인 것도 있었다. 레벨이 조금이라도 높았다면 잡을 엄두도 못 냈을 것이다.
우현은 뱀장어의 근처로 가서 약점을 살폈다. 이 뱀장어의 길이는 거의 3미터는 되어 보였는데, 뱀장어는 우현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의 주위를 맴돌았다.
황금 전기뱀장어의 급소는 목으로, 목에는 빨간색의 비늘이 있는데 거기가 약점이었다. 우현은 뱀장어와 함께 괴석 사이를 헤엄치다 비늘을 발견하자 단검을 꺼내 들고 뱀장어의 목을 찔렀다. 붉은 선혈이 뿜어져 나왔다.
-11 데미지가 떴다.
뱀장어는 발버둥 치며 우현에게서 벗어나려 했지만 그는 재빨리 뱀장어를 껴안았다. 뱀장어는 우현을 떨어뜨리기 위해 꼬리를 흔들어 전류를 방출했다!
지지지직!
우현은 지금까지 온갖 일을 겪었으나 자신이 전기구이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고 마치 전신이 개미떼에 물어뜯기는 듯한 감각이 그를 사로잡았다.
“으읍……!”
전기에 맞으니 몸이 마비가 되는 것처럼 정신이 오락가락했고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이를 악물고 단검을 들어 뱀장어의 등뼈를 찔렀다.
콰곽!
뱀장어는 미친 듯이 헤엄을 치기 시작했고 우현은 녀석에게 매달려 끌려갔다. 또 한 번의 전류가 우현을 휘감고 지나갔지만 그는 이를 악물고 버텨냈다. 이 뱀장어 레벨이 조금만 높았어도 우현은 이미 죽었을 것이다.
황금 전기뱀장어는 돌 더미 사이를 헤치고 지나가며 몸부림을 쳤다. 목에서는 피가 계속해서 콸콸 쏟아져 나오고 있었고 우현은 거의 5, 6분을 매달려 있었다. HP(생명력)가 간당간당해지면 포션을 마시면서 겨우 버텼다.
우현은 틈날 때마다 단검으로 뱀장어의 몸뚱이를 찔렀다.
-5, -5, -5
데미지가 쌓이자 뱀장어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느려지며 전기 충격도 가하지 못하게 되자, 우현은 더 거칠게 뱀장어를 몰아붙였다.
곧 황금 전기뱀장어는 하얀 뱃가죽을 드러낸 채, 바닥으로 가라앉기 시작했고 긴 전투는 우현의 승리로 돌아갔다. 우현은 녀석에게 다가가 떨어진 아이템을 주웠다.
부드러운 가죽 장갑 : 실버급, 속성-감정되지 않음
감정을 해 봐야 알겠지만, 척 보기에도 어쌔신 아이템 같았다. 우현은 아이템을 배낭에 넣었다.
얼얼한 느낌이 점점 사라지며 마비가 풀리자 우현은 헤엄을 쳐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어두운 돌 더미를 가로지르자 먼 곳에 있는 풀이 물결을 따라 춤추는 게 보였다.
“후우, 어디보자.”
풀은 마치 실처럼 가늘었고 외형으로 보아 수린초인 것 같았다. 수린초는 회복약을 제조하는 데 필요한 원료 중의 하나였다. 회복 포션 한 병을 30골드라고 했을 때, 수린초는 20골드 정도의 비중을 차지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두 마리의 붉은 물뱀이 수린초 근처에 있는 게 보였다.
물뱀 : 레벨 3, HP(생명력) 100/100
잡으려면 잡을 수 있는 몬스터지만 체력도 많이 떨어진 상태였고 두 마리나 있어서 일단 우현은 기다렸다.
물뱀이 멀리 간 후에야 수린초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었다. 우현은 수린초를 채취해 배낭에 넣으며 근처에 수린초가 더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주변을 더 뒤져보자 그는 곧 두 개의 수린초를 더 찾아낼 수 있었다. 꽤 짭짤한 수확이다.
이제 물 위로 올라간 우현은 숨을 돌리고 다시 물거미 사냥을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곧 게임이 끝날 시간이 되었다.
[3분 후, 서비스가 종료됩니다. 로그 아웃 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얻은 게 많은 날이었다. 얻은 것도 많고 번 것도 많고 그 외에도 서연과의 만남 등. 뿌듯한 기분으로 로그아웃할 수 있었다.
* * *
다음날, 아침 9시.
우현은 아침을 먹고 바로 도장으로 향했다. 원래는 단지 게임 플레이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운동을 시작한 것이었지만, 이제 자기단련은 선택이 아닌 필수의 문제가 되고 말았다. 생존하기 위해서는 강해져야만 한다.
하루에 도장 세 군데를 다닌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짓일 수도 있지만, 우현은 잘 적응했다. 그는 이미 곽한철을 죽이기 위해서 더 극한의 상황까지 자신을 몰아붙인 적이 있었다.
운동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전신에 힘이 풀리고 곧 쓰러질 듯 했다. 그는 가벼운 한숨을 내쉬고 냉장고에서 영양 드링크를 꺼내 마셨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우현! 집에서 뭐해? 나가서 놀자.”
목소리를 듣는 순간 우현은 그가 단우임을 알았다. 단우는 그의 절친한 친구로 두 사람은 어릴 때부터 같이 자랐다. 단우는 부잣집 아들이라 고등학생이 되면서 서울로 이사 갔으나 그래도 두 사람의 우정은 변함이 없었다.
단우는 의리 하나는 끝내주는 친구였다. 이전 생에서, 우현이 가난으로 허덕일 때, 단우는 곽한철에게 발각 당할 위험을 무릅쓰면서 우현을 도왔다. 그가 없었더라면 우현은 복수 계획을 짜지 못했을 것이다.
단우만큼 좋은 친구를, 그처럼 마음이 통하는 친구를 또 만나기는 정말 어려울 것이다. 이 친구를 다시 만날 수 있다니 눈물이 날 것 같아 우현은 한 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