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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 재벌애인 사용설명서 / Chapter 3: 제 3 화

Chương 3: 제 3 화



제 3 화

자체발광 도련님

5분 뒤, 한 무리의 사람들이 꼭대기 층의 창고 문 앞에 멈춰 섰다.

아이는 시혁의 품 안에서 몸을 뒤틀어 아래로 내려온 뒤 힘껏 창고 문을 열려 했다. 그 표정은 더 없이 초조해 보였다.

“꼬맹아, 왜 그래? 이 안에 뭐가 있어?”

영문을 모르겠다는 지훈의 물음 뒤로, 무표정한 시혁의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문 열어.”

“예!”

사장이 얼른 고개를 끄덕인 뒤, 곁에 있던 매니저를 채근했다.

“얼른 문 열어드려요!”

“아⋯⋯ 무, 문을 열라고요?”

여자 매니저가 더듬더듬 되물었다.

‘젠장, 한영서가 이 안에 있는데!’

이 여자 매니저는 유상희에게 오디션이 끝나기 전까지 이 창고 문을 열지 않겠다고 약속한 장본인이었다.

하지만 등 뒤에 대유그룹 총수와 사장의 서슬 퍼런 시선을 두고, 알량한 약속을 떠올릴 이가 과연 어디에 있을까.

결국 그녀는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다급히 품 안의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보이는 것은 쓰러져 의식을 잃은 한 여자였다.

“이게 무슨 일이지? 어떻게 이 안에 사람이 있는 거야?”

사장이 잔뜩 화가 난 듯 물었다.

“저⋯⋯ 저도 몰라요. 제가 좀 전에 확인했을 때만 해도 이 안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정곡을 찔린 매니저가 황급히 변명에 나섰다.

“빨리 사람부터 구하고 보자고!”

누군가 쓰러진 영서에게 접근하려던 그때, 총알같이 달려 나간 아이가 잔뜩 찡그린 얼굴로 그 앞을 가로 막았다.

아이의 눈엔 누구의 접근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불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유 사장님, 저⋯⋯.”

난감한 표정의 사장은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입을 벙긋거렸다.

시혁의 시선이 안절부절못하는 여자 매니저를 훑고 쓰러진 사다리를 향했다.

어린 아이만 겨우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천장 쪽 작은 창문까지 확인하자 그는 곧 이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대충 파악할 수 있었다.

손을 들어 다른 이들을 모두 물린 뒤 앞으로 나아간 그는 바닥에 쓰러진 영서를 손수 안아 들었다.

품 안에 안긴 영서에게선 상쾌한 향이 느껴졌다. 좀 전 아이에게 짙게 묻어있던 그 향기였다.

아이는 시혁만은 가로막지 않았다. 그러나 썩 내키는 얼굴은 아니었다. 오히려 제가 어린아이만 아니었다면 자신이 직접 안아 옮겼을 거라는 의지가 어린 표정이었다.

* * *

제일병원.

영서가 깨어난 것은 다음날 오전이었다. 눈을 뜨자, 한 남자가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왔다.

창가 밑 의자에 긴 다리를 꼬고 앉은 그는 이른 아침의 햇빛 아래에서도 냉랭해보였다. 마치 절대 녹지 않는 얼음 망토를 두른 듯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으며, 중세 시대 어느 나라의 왕이라도 되는 양 고고하고 냉담한 얼굴이었다.

또 넓은 어깨와 탄탄한 허리는 꼭 맞춘 듯한 정장으로 싸여 있었고, 입고 있는 하얀색 셔츠의 단추는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채워져 있었다.

곧 영서의 시선을 느낀 남자가 고개를 들자, 심해처럼 깊은 두 눈동자가 보였다. 남자의 눈동자에서 흘러나오는 서늘한 빛은 곧장 그녀를 향했다. 수술용 메스처럼 예리한 그 눈동자는 마치 그녀를 해부라도 할 것 같은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영서는 온 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나는 것을 느꼈다.

먼저 이 정적을 깬 것은 영서였다. 그녀는 낯선 남자의 시선이 불편했지만, 이내 그걸 무릅쓰고 초조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기, 죄송하지만 제가 어떻게 여기에 오게 된 거죠? 혹시 꼬마아이 보셨나요? 네다섯 살 정도 되어 보였어요. 말은 없고, 하얗고 말랑말랑해 보이는 굉장히 귀여운 아이였는데.”

귀여운 아이⋯⋯. 영서의 묘사에 한쪽 눈썹을 치켜 든 남자가 영서의 오른 편으로 잠시 시선을 주었다. 이윽고 생김새만큼이나 냉랭한 목소리가 낮게 울렸다.

“우리 민우를 말하는 겁니까?”

얼음처럼 차가운 남자의 시선 아래 하얗고 말랑한, 꼭 찹쌀떡 같은 아이가 오른쪽 침대에 누워 곤히 잠들어 있는 것이 보였다.

또한 아이의 손등에는 링거주사가 꽂혀있었다.

“아, 맞아요!”

한시름 놓은 듯 한숨을 내쉰 영서는 몸을 살짝 틀어 아이의 이마를 살짝 쓸어주었다. 열은 내린 상태였다.

일단 창문을 통해 창고 밖으로 내보내기는 했지만 곧바로 후회했었다.

아이는 너무 어렸고 열까지 나는 상태였던 데다가, 술집은 굉장히 혼잡하고 시끄러운 곳이었다.

무턱대고 애만 내보낸 것이 오히려 더 큰 위험한 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뒤늦게야 하게 된 것이다.

아이에게서 다시 남자에게로 시선을 옮긴 영서가 입을 열었다.

“당신이 이 아이의⋯⋯?”

그러나 말을 시작한 순간 자신의 질문이 얼마나 바보 같은 것이었는지를 깨달았다.

눈앞의 남자는 아이와 똑 닮아있었다. 빼다 박은 듯한 생김새로 볼 때, 부자 관계가 분명했다. 곧 남자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아빠입니다.”

“예쁜 아가씨, 깨어났네요. 난 이 아이 삼촌이에요!”

옆쪽 비스듬한 방향에서 돌연 얼굴 하나가 쑥 나타났다. 무의식적으로 뒤로 슬그머니 몸을 물리던 영서는 불현듯 그 얼굴이 누구인지 깨달았다.

“유⋯⋯ 유지훈?”

대유그룹의 둘째 아들이자 연예기획사 골든에이지 엔터의 사장, 유지훈은 출중한 외모와 사회적인 성격 덕에 연예인보다 더 많이 잡지나 신문을 장식해오던 유명 인사였다. 그러니 그 얼굴을 못 알아볼 리 없었다.

‘얼음 조각 같은 저 남자가 아이의 아빠고, 유지훈이 아이의 삼촌이라면⋯⋯ 그럼 저 남자가 유지훈의 형 유시혁이라고? 유시혁은 손에 꼽히는 재벌이자 각 분야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잖아.

내가 구한 꼬마가 말로만 듣던 유시혁의 사생아, 자체발광 도련님일 줄이야⋯⋯.’

* * *

시혁은 병상에 누운 영서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영서의 얼굴에 떠오른 놀란 기색이 진실인지 거짓인지를 판단하고 싶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영서가 여태 아이의 정체에 대해서는 조금도 몰랐던 것이 사실임을 확신한 시혁이 입을 열었다.

“말씀하시죠.”

“예? 뭘요?”

영서는 두서없는 상대의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우리 형의 말은, 우리 꼬맹이를 구해준 것에 대한 대가로 원하는 것을 말하라는 거예요.”

지훈이 ‘봉 잡으셨네.’하는 표정으로 설명에 나섰다. 그 말을 듣고 재빨리 머리를 굴린 영서는 신중하게 입을 열었다.

“사실 사례를 하실 필요는 없어요. 제가 아이를 구한 건 맞지만 저도 아이 덕분에 살았는걸요. 아이가 먼저 나가서 사람들을 불러오지 않았더라면, 전 지금도 그 안에 갇혀있었을 테니까요. 뭐, 그걸로 계산 끝난 거죠.”

운 좋게도 재벌가 도련님을 구하기는 했지만, 그것에 대한 대가를 요구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돈이 많을수록 의심은 더욱 많아지는 법이고, 더군다나 지금 그녀의 눈앞에 있는 이들은 무려 초일류 재벌가 대유그룹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이번 일을 자신의 자작극으로 의심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사한 일이었다.

얼음 같은 시혁의 눈에 조금 전까지 잔뜩 어려 있던 의심과 경계의 빛을 직접 제 눈으로 목격하지 않았던가.

감당하지 못할 후폭풍의 씨앗을 남겨놓느니, 차라리 이들과의 관계를 애초에 맺지 않는 것이 나았다.

영서는 자신이 한 답에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생각했지만, 시혁의 표정을 보니 그건 저만의 생각이었던 것 같았다.

순간 영서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내가 뭘 잘못 말했나? 왜 저렇게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는 거지?’

“형, 그런 표정을 짓고 있으면 얼마나 무서운데! 은혜를 갚으려고 하는 건지, 복수를 하려고 하는 건지 분간할 수가 없잖아.”

영서의 불안한 눈빛을 읽은 지훈이 능청스러운 말로 분위기를 녹였다.

“우리 형이 남한테 빚지고 사는 걸 못 견뎌 해요. 예의 차리지 말고 말씀하세요!”

대가를 받아달라고 강요하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영서가 입술을 살짝 뒤틀었다.

“예의 차리는 게 아니라 정말 필요가 없어서 그래요. 정말이에요. 믿지 못하시겠다면 가서 확인이라도⋯⋯.”

“됐습니다.”

시혁은 약간 성급해 보이는 얼굴로 영서의 말을 잘랐고, 지훈이 대신 대답했다.

“호텔 창고에 있는 CCTV는 이미 확인했어요. 우리 꼬맹이는 제 발로 그 안에 들어갔고 뒤이어 당신이 들어가던걸요. 여기 직원이 당신을 그곳에 가뒀다고 시인도 했고요. 그러니까 걱정 마세요. 우린 당신을 의심하지 않아요. 그저 당신이 우리 꼬맹이를 구해준 것이 고마워서 그러는 거니까 뭐든 말씀하세요!”

‘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 건가.’

영서는 점점 더 조여 오는 시혁의 눈빛에 하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그럼⋯⋯ 돈을 주실래요?”

영서는, 돈이 넘쳐나는 부자라면 이렇게 깔끔한 보답 방식을 제일 선호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므로 유시혁도 돈으로 해결하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 성격이지 않을까.

또한 돈이 아니라 다른 것을 요구한다면, 오히려 다른 의도를 갖고 있었던 것이라고 더 의심할지도 몰랐다.

이것보다 더 적절한 답은 없을 거라고 자부했지만, 시야에 들어온 시혁의 얼굴은 전보다 구겨져 있었다.

그러자 영서는 차라리 울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돈도 못주겠다면 차라리 무슨 대가를 주겠다고 직접 말하든가! 몇 마디 더한다고 죽기라도 해? 왜 저렇게 말을 아낀담.’

지훈은 코를 만지작거리며 시혁의 의사를 해석해주었다.

“우리 형은 돈을 대가로 주는 건 상대에게 모욕적인 처사라고 생각하거든요.”

영서가 속으로 울부짖었다.

‘상관없으니까 그냥 모욕하라고!’

대가를 줄 테니 말하라고 요구하는 이 당혹스러운 사람은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 것일까. 그리고 영서로서는 이보다 더 합당한 대가를 떠올릴 수가 없었다.

영서가 빠져나갈 수 없는 곤경에서 허우적거리던 그때, 시혁이 불쑥 입을 열었다.

“결혼합시다.”

너무나 뜬금없는 소리에 1초 정도 멍해졌던 영서는 잘못 넘긴 침에 사레가 들려 격렬하게 기침을 했다.

“콜록콜록! 뭐, 뭐라고요?”

가까스로 기침을 멈춘 영서가 다급히 지훈을 바라보았다.

‘제발 해석 좀 해주세요!’

하지만 이번에는 영서뿐만 아니라, 지훈 역시 얼이 빠진 표정을 하고 있었다.

“형, 그게 무슨 뜻이야? 이건 나도 해석 불가야!”

이때, 뭔가를 번뜩 떠올린 영서가 휘청거리며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설마, 제가 당신 아들을 구해준 것에 대한 대가로 결혼해주겠다는 거예요?”

잠시 고민하던 시혁은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셈이죠.”

영서는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간다는 듯 넋을 잃고 시혁을 바라보다 이마를 살짝 짚었다. 그에 반해 시혁의 표정은 그 충격적인 말을 내뱉고도 흔들림이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어디 계시죠? 저 지금 막 환청이 들리고 환각 증세가 나타나는 것 같은데⋯⋯.”

곁에 있던 지훈도 억울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전 어디서 떨어지지도 않았는데, 그쪽이랑 같이 이상해진 것 같네요!”

갖은 괴롭힘으로 단련이 되어 단단해진 영서도 시혁이 던진 폭탄발언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꼬마 하나를 구해줬을 뿐인데 그 꼬마의 아빠가 보답하겠답시고 결혼을 하자고 하다니. 다른 사람이라면 그러려니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요구를 한 장본인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재계 유명인사, 배우보다 더 멋지기로 소문난 유시혁이었다.

외모로 따지자면 영서도 자신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유시혁이라면 자신 정도의 미인은 차고 넘치도록 봐왔을 것이다.

왜? 대체 왜 일까.

첫 눈에 반해 시간을 갖고 만나면서 좀 더 알아 가자고만 말했어도 이렇게까지 놀라진 않았을 것이다.

그 말이라면 이해도 할 수 있었다. 가능성엔 한계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무려 ‘결혼합시다.’였으니, 영서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자…… 좋아하는 거 아니었나요?”

영서가 불쑥 물었다.

“뭐? 푸하하하!”

그 질문에 지훈이 뒤로 넘어갈 정도로 큰 웃음을 터뜨렸다. 반면, 시혁의 얼굴은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진 듯 어두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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