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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4% 신비의 제왕 / Chapter 2: 2화 상황

Chapter 2: 2화 상황

2화 상황

“흠⋯⋯”

스위치에서 손을 떼고 왼쪽 관자놀이를 꾹 누른 민석은 기억의 조각들을 뒤지며 가스등에 불이 붙지 않는 이유를 찾았다.

몇 초가 지난 뒤, 그는 대문 옆쪽으로 걸어가 마찬가지로 벽에 박힌 회백색 관과 연결된 기계 장치 앞에 이르렀다. 가스계량기였다.

노출된 곳곳으로 드러난 기어와 베어링을 보던 민석은 주머니에서 동전 하나를 꺼내들었다.

동전은 구릿빛으로 빛났고 그 정면에는 왕관을 쓴 남성의 두상이, 뒷면에는 밀 이삭으로 이루어진 ‘1’자가 새겨져 있었다.

민석은 이것이 동 펜스라고 불리는, 로엔 왕국의 가장 보편적인 동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1펜스의 종류는 5펜스, 1펜스, 반 펜스, 그리고 4분의 1 펜스 네 개로 나뉘었다.

하지만 이 화폐의 값어치가 상당히 주먹구구식으로 정해져 있는 터라, 하나의 동전을 쓰기 위해 여러 가지의 물건을 사야만 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있었다.

조지 3세가 제위에 오른 뒤 발행한 이 동 펜스를 손가락 끝으로 몇 번 뒤집어 보던 민석은 그것을 가스계량기의 가늘고 긴 ‘입’에 집어넣었다.

땡그랑!

펜스가 계량기 안으로 떨어지자, 철컥철컥 소리와 함께 기어가 움직이더니 짧지만 리드미컬한 기계음이 들려왔다.

민석은 잠시 그 기계를 바라보다가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가 가스등의 스위치를 돌렸다.

타다닥, 탁!

불꽃이 피어오르면서 빠르게 커져갔다. 가스등의 유리를 채우던 빛은 그 밖으로 퍼져 나오며 방 안을 따뜻한 빛으로 채웠다.

어둠은 움츠러들고, 붉은 달빛이 창문 밖으로 떠밀렸다. 민석은 안도한 듯 한숨을 내쉬며 빠른 걸음으로 거울 앞에 다가갔다.

그는 단 하나의 작은 부분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온 신경을 집중해 자신의 관자놀이를 바라보았다.

잠시 관자놀이를 바라보던 그는 상처에서 더 이상 피가 흘러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느릿하게 꾸물럭거리는 회백색 뇌수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빠르게 차오르고 있는 살을 보면 앞으로 3, 40분 안에는, 늦어도 두세 시간 안에는 상처가 완벽히 아물 것이 분명했다.

“타임슬립에 이런 효과도 있나…….”

민석이 안도한 듯 가슴을 쓸어내리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조금 무섭긴 했지만, 어찌됐든 머리에 구멍이 뚫린 채로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낫지 않은가.

마음을 진정시킨 그는 서랍을 당겨 작은 비누를 꺼낸 뒤 주방 옆쪽에 걸린 낡은 수건 중 하나를 챙기고는, 대문을 통해 2층에 있는 공용 화장실로 향했다.

머리에 묻은 핏자국을 먼저 처리해야지. 내일 아침에 동생 멜리사에게 들킨다면 절대 조용히 지나갈 수 없을 테니까.

* * *

문밖의 복도는 어두웠다. 끄트머리에 자리한 창문으로 쏟아지는 새빨간 달빛에 의지해 간신히 사방의 실루엣만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 붉은 달은 마치 깊은 밤, 사람들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는 정체 모를 괴물의 눈동자 같았다.

발소리를 내지 않으려 조심조심 걸음을 옮기던 민석은 왠지 모르게 소름이 돋는 것을 느끼며 계속해서 공용 화장실로 향했다.

화장실 안쪽은 달빛이 잘 들어 모든 것이 또렷하게 보였다. 민석은 세면대 앞에 서서 수도꼭지를 열었다.

쏴아아, 물소리가 들려오자, 불쑥 집주인 프랭키 씨가 떠올랐다.

키가 작고 빼빼 마른 프랭키 씨는 중절모를 쓰고 조끼와 검은 정장을 갖춰 입은 채, 매일같이 몇 개의 공용 화장실을 순찰하며, 그 안에서 물소리가 들려오는지 확인하곤 했다. 물세 역시 임대료에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물소리가 크게 들린다면 프랭키 씨는 신사다운 옷차림과 어울리지 않게 지팡이로 화장실 문을 두드리며 고래고래 소리를 쳐댔다.

‘빌어먹을, 도둑놈!’

‘낭비는 부끄러운 일이다!’

‘네놈이 누군지 똑똑히 기억해두지!’

‘또다시 이런 일이 생긴다면, 네놈의 더러운 짐을 당장 방에서 빼버릴 테다!’

‘잘 기억해둬, 이건 팅겐 시에서 가장 좋은 아파트라고. 네가 내 아파트보다 더 좋은 곳을 찾을 수가 있을 것 같으냐!’

프랭키 씨의 목소리를 떠올린 민석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저으며 적신 수건으로 얼굴의 핏자국을 닦아냈다.

공용 화장실의 더러운 거울을 통해 얼굴에 핏자국과 상처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확인한 그는 그제야 리넨 셔츠를 벗은 뒤 비누로 그 옷에 묻은 핏자국을 지웠다.

바로 그때, 또 다른 문제점이 그의 머리에 떠올랐다.

상처에서 쏟아진 대량의 피. 그 피는 자신의 몸에만 묻어있는 것이 아니라 방 안에도 남아있었다.

몇 분 후, 셔츠에 묻은 피를 처리한 민석은 젖은 수건을 들고 빠르게 방 안으로 돌아왔다. 그는 일단 책상에 손으로 묻힌 핏자국을 닦고 가스등의 빛에 기대 다른 곳에 남아있는 혈흔을 찾았다.

곧이어 그는 바닥과 책상 아래쪽에 튄 피와 왼쪽 벽 아래에 굴러다니는 노란 탄피를 발견했다.

“⋯⋯리볼버로 한 번에 관자놀이를 맞힌 건가?”

이전에 찾았던 단서들을 조합한 끝에 민석은 단번에 클레인의 사인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추측을 검증하는 데 급급하지 않고, 그저 열심히 혈흔을 닦아내며 ‘현장’을 처리한 뒤 떨어진 탄피를 집어 들었다. 그러곤 책상 옆으로 가 리볼버의 탄창을 열어 그 안에 들어있는 총알을 쏟아냈다.

좌르륵-

다섯 개의 총알이 좌르륵 소리를 내며 책상 위를 굴렀다.

“역시⋯⋯.”

빈 탄피를 바라보던 민석은 총알들을 탄창에 채워 넣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좌측으로 시선을 돌린 그는 펼쳐진 노트에 적힌 「모든 사람은 죽는다, 나를 포함해서.」라는 글귀를 한 자 한 자 다시 읽어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총은 어디에서 난 거지?

자살인가, 아니면 위장된 타살인가?

평범한 역사학과 졸업생이 대체 왜 이런 짓을 저지른 거지?

잠시 고민하던 민석은 다른 리넨 셔츠로 갈아입은 뒤 의자에 앉았다. 그러곤 보다 더 중요한 일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클레인이 어떤 일을 겪었는지는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진정한 문제는 대체 어떻게 타임슬립을 했는지,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 였다.

부모님, 친척, 절친한 친구들과 지인들. 인터넷과 게임, 각양각색의 맛있는 음식들⋯⋯. 그런 것들을 두고 이런 세상에 남아야 할 이유가 아무것도 없었다.

탁, 탁, 탁⋯⋯. 민석은 오른손으로 리볼버의 실린더를 당겼다가 제자리로 돌려놓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반복했다.

“그래, 사실 달라진 건 없어. 조금 재수가 없었을 뿐이지. 그런데 어째서 내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재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니 오늘 밤에 저녁을 먹기 전 운수를 대통하게 만드는 의식을 치렀었다.

그 순간, 민석의 머릿속에 한 줄기 번개가 번쩍 스쳐 지나갔다.

키보드 하나로 인터넷에서 뭐든 검색을 해서 해결했던, 뛰어난 키보드 정치가, 키보드 역사학자, 키보드 경제학자, 키보드 생물학자, 키보드 민속학자.

그는 언제나 ‘뭐든지 잘 아는’ 사람이었다. 물론 그의 가장 친한 친구는 그런 그를 보고 ‘뭐든 조금씩만 아는’ 사람이라고 놀려대었지만.

중국의 고대 점술 역시 그가 ‘조금 알고 있는’ 분야 중 하나였다.

지난 해 고향을 방문했을 때 그는 ‘진한 시대로부터 비밀스럽게 전수되어 온 점술의 정수’와 관련된 오래된 책을 본 적이 있었다. 사실 인터넷에서 아는 척을 하기 좋을 것 같아 읽은 것에 불과했지만.

하지만 그 책에 대한 흥미는 거품이 꺼지듯 빠르게 사그라졌다. 그는 결국 앞쪽의 몇 페이지만 들춰본 뒤 책을 던져 버렸다.

그는 최근 한 달 동안 계속해서 재수 없는 일을 겪었다. 휴대폰을 잃어버렸고, 지갑을 도둑맞았고, 일터에서는 실수를 연발했다.

그때 그의 머릿속에 우연하게도 그 점술 책의 앞부분에 나와 있던 운수 대통 의식이 떠올랐다. 별다른 수고가 필요치 않은, 굉장히 간단한 의식이었다.

필요한 것이라고는 네 명 분의 음식을 준비한 뒤, 그것을 방의 네 구석에 놓는 것뿐이었다.

책상 위나 의자 위에 둬도 상관없었다. 네 구석에 음식을 둔 후에는 방 중앙에 서서 시계 역방향으로 사각형을 그리며 네 걸음을 걸으면 끝.

그러면서 첫 번째 걸음을 걸을 때는 속으로 ‘현황(玄黃)의 선존(仙尊)으로부터 기인하는 복’을, 두 번째 걸음에는 ‘현황의 천군(天君)으로부터 기인하는 복’을, 세 번째에는 ‘현황의 상제(上帝)로부터 기인하는 복’을, 그리고 네 번째 걸음을 걸을 때는 ‘현황의 천존(天尊)으로부터 기인하는 복’을 읊어야 했다.

걸음을 다 걷고 난 뒤 눈을 감고 그 자리에서 5분 기다리면 의식이 완성되었다.

돈이 드는 일도 아니니 시도나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다. 민석은 책을 펼친 뒤, 그 책에 적힌 의식을 그대로 거행해보았다.

하지만 역시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고 생각할 무렵, 갑자기 타임슬립을 하게 된 것이다.

“역시 그 의식 때문인가……?”

민석은 리볼버를 건드리던 손을 멈추고, 허리를 곧추세워 똑바로 자리에 앉았다. 만일 그 의식 때문에 타임슬립을 하게 된 거라면, 그것을 통해 다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몰랐다.

어찌 되었든, 시도는 해봐야 했다.

* * *

일단 계획을 세우자, 이전까지 느꼈던 두려움과 당황스러움, 그리고 불안감이 모두 마음 한구석으로 밀려갔다.

걱정을 조금 떨치고 나서야 민석은 클레인의 남은 기억들을 자세히 들여다 볼만한 정신과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민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가스 밸브를 잠그고, 벽등이 천천히 어두워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는 등이 다 꺼지고 난 뒤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곤 무의식적으로 리볼버를 쓰다듬으며 턱을 괴고, 선홍색 달빛으로 물든 어둠 속에서 곰곰이 ‘회상’에 잠겼다. 마치 영화관에서 가장 집중하고 있는 관객처럼.

타임슬립을 했기 때문인지, 클레인의 기억은 연관성을 갖지 못한 채 흩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이가 빠진 것처럼 듬성듬성 비어 있었다. 예컨대 어떻게 이 리볼버를 갖게 되었는지, 자살인지 타살인지, 노트에 적힌 「모든 사람은 죽는다, 나를 포함해서.」라는 구절이 대체 무슨 의미인지, 사건이 있기 이틀 전에 무슨 특별한 일은 없었는지 따위의 사실에 대해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구체적인 기억이 망가졌을 뿐만 아니라, 알고 있던 지식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의 상태로 볼 때, 클레인이 다시 대학으로 돌아간다면 졸업을 하지 못할지도 몰랐다. 학교를 떠난 지 며칠 밖에 안 된 상황이었지만, 조금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이틀 뒤에는 팅겐 대학 역사학과의 면접이 있었다. 로엔 왕국에서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자신의 모교에서 학업을 이어갈 수가 없었기에, 지도 교수는 클레인에게 팅겐 대학과 베크랜드 대학에 취업 할 수 있는 추천서를 써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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