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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6% 필드의 마법사 / Chapter 3: 필드의 마법사

Chapter 3: 필드의 마법사

필드의 마법사

제3화

3화. 기억을 더듬다

쨍!

이혁이 던진 술잔이 깨지는 소리가 울렸다. 이혁은 술도 마셨겠다 제정신도 아니었고 참을 필요성도 느끼지 않았다. 원하지도 않았는데 낯선 곳에 낯선 사람이 되어 와 있고, 사람들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이유로 비웃으면서 온갖 모욕을 가한다.

이혁은 남자의 얼굴에 주먹을 날렸다. 그 주먹이 제법 매서워 남자는 허리가 휘청거리며 두 발자국이나 물러나야 했다.

“어이 약골, 한 방 밖에 안 되나?”

이혁의 도발에 남자가 씩씩대며 달려들었다. 두 사람은 한데 엉키더니 뒤에 있는 테이블로 쓰러졌다. 빈 술병들이 와르르 쏟아지며 와장창 깨졌다.

취객들은 웃음을 뚝 그치고 멍하니 그 자리에 굳어 있었다. 겁쟁이 로니가 이렇게 나올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이다.

그들 중 가장 먼저 반응한 사람은 술집의 주인인 케니 번스였다.

“보고만 있을 겁니까? 어서 말려요!”

그의 말에 사람들은 정신을 차린 듯 달라붙어 두 사람을 떼어냈다. 겨우 싸움을 중지시키고 보니 남자의 이마에서 피가 흐르고 뺨은 부어올랐지만 이혁은 머리와 옷이 엉망이 된 것 빼고는 아무런 상처가 없었다.

그는 옷매무새를 정돈한 뒤, 남자에게 말했다.

“말해봐, 누가 겁쟁이고 누가 멍청이지?”

남자는 거칠게 문을 닫고는 가게를 나가 버렸다. 이혁은 뒤돌아서며 번스에게 사과를 했다.

“소란을 피워서 죄송합니다. 오늘 화가 너무 나서……. 나중에……. 다시 와서 정식으로 사과를 하고 배상도 하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번스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몸을 돌려 문 쪽으로 걸어갔다. 뚱뚱한 남자를 지나치면서는 한마디를 했다.

“우유는 너나 마셔, 비곗덩어리.”

아무도 그에게 뭐라 말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로니가 이런 행동을 하다니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멍하니 이혁의 뒷모습만 바라볼 뿐이었다.

* * *

술을 마셨음에도 이혁은 그날 밤 내내 잠을 설쳤다.

설풋 잠이 들었을 때는 계속해서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그는 여행 가방을 들고 시티 그라운드 앞에 서 있었다.

곧 장면이 바뀌었다. 푸른 잔디로 가득한 경기장에 자신은 서 있었고 그 옆에는 누군지 모를 중년 남자가 어린 축구 선수들에게 무언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중년 남자는 사라졌고 말하고 있는 사람은 자신으로 바뀌었다. 자신은 어린 선수들에게 열심히 말을 하는데,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또 장면이 바뀐다. 시티 그라운드에서 경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자기 앞에는 다시 그 중년 남자가 서 있었다. 그는 양복을 입고 경기를 지휘하고 있었다. 장면은 계속 전환되지만 그때마다 경기 중인 것만은 변함이 없었다. 중년 남자는 갈수록 화를 내며 초조해했다.

그러다 그 중년 남자는 다시 사라지고 말았다. 한 노인이 다가와 자신에게 무어라고 말을 했다. 그러나 입 모양만 보일 뿐,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 다음에는……. 잠에서 깨어났다.

눈을 떴을 때, 창밖은 어두웠고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낯선 집 안을 바라보자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게 다시 한 번 느껴졌다.

로니 감독이 사는 곳은 블랜포드라는 아파트였다. 혼자 사는 그에게 이 집은 꽤 큰 편이었지만, 임대료가 그리 비싸지 않았고 노팅엄 포레스트의 훈련장과 가깝기 때문에 이만한 곳이 없었다.

그런 기억을 꼼꼼하게 확인하고 나서 이혁은 샤워를 했다. 그리고 먹을 것을 찾아보았다. 냉장고 문을 여는데, 거기 수많은 쪽지들이 붙어 있는 게 보였다. 안에 있는 빵과 우유를 꺼낸 뒤, 그는 쪽지를 읽으며 간단히 식사를 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A4용지에 적힌 일과표였다. 그것을 본 이혁이 입을 떡 벌렸다.

6:30~ 7:00 아침 조깅

7:00~7:20 아침 식사

7:00~7:40 신문 읽기

7:40~8:00 훈련장으로 출발 (시합일 별도)

……

하루 일정이 아주 세세하게 작성되어 있었다. 시간을 분 단위로 나눠 계획을 세워놓았는데 아침에 눈을 뜨는 그 시점부터 잠들 때까지의 일정이 표 안에 있었다. 평소 자유로운 생활을 하던 이혁으로써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기도 했다.

“이거 완전 강박증 환자 아닌가?”

그는 그제야 술집에 갔을 때, 케니 번스가 왜 그런 반응을 보였는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로니 감독은 일 중독자에다가 기계 같이 같은 생활을 반복한 사람이기 때문에, 가끔 기분을 내는 일 같은 건 없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34년을 살다니, 정말 신기한 사람이었다.

계획표 주변에는 빨강, 노랑, 초록색의 포스트잇들이 붙어 있었다. 노란색에는 언제 무슨 회의가 있는지 적혀 있었고 초록색에는 전화번호들이 쓰여 있었다. 빨간색 포스트잇이 가장 많았다. 거기에는 하루에 해야 할 중요한 일들이 적혀 있었다. 그는 냉장고 위를 보았는데 거기에는 그가 어제 아침에 적어둔 듯한 빨간색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다.

거기 쓰인 것은 다음과 같았다.

-감독 첫 경기! 반드시 이겨야 한다!

이것을 보자 그는 왠지 로니 감독이 어떤 기분으로 쪽지를 썼을 지를 상상할 수 있었다.

주먹을 꽉 쥐고 이를 악문 채, 투지를 불태우며 이 다짐을 써내려 갔을 것이다.

그러나…….

이혁은 어제 봤던 뉴스가 떠올렸다. 노팅엄 포레스트가 홈에서 약팀인 월솔에게 처참하게 패했다는 내용이었다. 혹시 로니 감독이 이혁인 자신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대패한 것일까? 이혁은 냉장고 문을 바라보며 가만히 생각에 빠졌다.

그는 곧 손을 뻗어 냉장고에 붙은 종이들을 하나하나 떼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떼어낸 종이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적힌 빨간색 포스트잇이었다.

이혁은 종이들을 휴지통에 던져 넣은 뒤, 손을 탁탁 털며 주방을 나섰다.

시계는 7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계획표에 따르면 8시까지 훈련장에 가야 했다.

이혁이 느끼기에 현재 상황은 매우 나빴고 황당하면서 어이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이미 로니였고 다시 이혁으로 되돌아갈 방법은 없는 것 같았다.

결국 자신은 이 재수 없는 상황을 모두 감당해야 할 것 같았다. 이혁은 코트를 걸치고 우산을 든 채, 집 밖으로 향했다.

* * *

노팅엄 포레스트의 훈련장은 빌보르데에 위치해 있었다. 훈련장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북쪽의 넓은 곳은 유스팀의 훈련 장소였고 남쪽의 좁은 곳이 노팅엄 포레스트의 훈련장이었다. 선수들은 이 두 훈련장을 구분하지 않고 그냥 빌보르데라고 불렀다.

겨울비가 보슬보슬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썼는데도 신발과 바지가 다 젖었다. 훈련장 경비인 이안 맥날은 그런 그를 발견하고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

“로니, 여긴 왜 왔어요?”

이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당연히 훈련을 하러 왔죠.”

“오늘은 1월 2일인데요. 선수들도 쉬는 날인데요…….”

이혁은 순간 아차 싶었다. 새해라는 것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를 보고 맥날은 가볍게 머리를 저었다. 그도 역시 이혁이 어제 머리를 부딪힌 것 때문에 이상이 생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아…… 왜 이렇게 조용한가 했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이혁은 멋쩍게 웃었다. 그가 몸을 돌려 돌아가려고 할 때, 빨간 아우디 A6가 이쪽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A6는 그의 앞에서 멈추었다. 차 뒷문에서 한 노인이 내렸다.

그에게 남아 있는 로니의 기억은 그가 자신의 보스이며 노팅엄 포레스트의 구단주인 니콜 데겔티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그를 따라 내린 것은 자신과 나이가 비슷해 보이는 남자였다. 그는 몸이 탄탄했으며 몸에 딱 맞는 재킷을 입고 있었다. 그는 얼른 우산을 펼쳐 들어 데겔티의 머리 위를 가렸다.

데겔티는 이혁에게 다가오더니 그를 덥석 껴안았다.

“로니, 어제 신문을 봤어. 전화를 하지 않은 건 미안하네, 아들이 미국에서 날 보러 와서……. 몸은 좀 어떤가?”

이혁은 구단주의 그런 태도에 기쁘면서도 순간 몸 둘 바를 몰랐다.

“괜찮습니다, 아마……. 아,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데겔티는 이혁을 놓아주고는 옆에 서 있는 중년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내 아들인 에반일세.”

에반 데겔티가 악수를 청했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매니저님…….”

아버지가 그의 말을 끊었다.

“에반, 매니저가 아니라 감독이라고 해야지. 여긴 미국이 아니야.”

에반은 미소를 지었다.

“죄송합니다, 감독님.”

이혁은 그가 내민 손을 잡으며 말했다.

“아, 괜찮습니다. 만나서 기쁘군요, 데겔티씨.”

데겔티가 말했다.

“에반은 미국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 어릴 때부터 거기서 자라서 여기가 낯설게 느껴질 거야. 미국에서는 축구 대신 NBA를 봤겠지. 하지만 이제 넌 고향으로 돌아왔다는 걸 명심해야 해. 영국은 신사와 축구의 나라니까.”

그의 말에 이혁은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문득 이 사람은 자기에게 월급을 주는 일종의 사장이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어제의 실패에 대해 해명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어제 일은 정말 죄송합니다. 첫 경기였는데…….”

그러나 데겔티는 오히려 이혁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로니, 그게 어떻게 자네 탓이라고만 할 수 있겠나. 요즘 우리 구단이 참…….”

여기까지 말한 뒤, 그는 하늘을 쳐다보며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그리곤 다시 이혁을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이번 일로 너무 자책하지 말고 앞으로 열심히 하면 돼! 그럼, 새해 복 많이 받게나.”

그는 다시금 이혁의 어깨를 두드린 뒤, 아들과 함께 훈련장 쪽으로 걸어갔다.

이혁은 멀어지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뭔가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이혁은 자신이 현재 축구 감독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하루아침에 이를 완전히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가 노팅엄 포레스트에 대해 아는 것은 이 팀이 과거에 빛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조금 전 데겔티가 어깨를 두드렸을 때, 그는 이 낯선 곳에서 처음으로 온기를 느꼈다. 완전한 이방인인 그에게 지금의 경험은 매우 소중한 것이었다. 이혁은 열심히 해보기로 결심했다. 자신을 의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한 방 먹이기 위해, 데겔티와 같은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 * *

이혁은 훈련장을 나와 목적 없이 길을 거닐기 시작했다. 언제부터인가 비는 그쳐 있었다. 그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현재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었다. 영어로 된 문장 또한 마치 본능인 것처럼 바로 그 뜻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한국어를 읽는 것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하지만 로니의 기억은 완전하지 않았다. 이혁은 자신이 감독으로서 어떻게 선수들을 훈련시켰는지, 어떤 전략을 짰는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다. 게다가 팀 선수들의 얼굴, 성격, 평판 등에 대해서도 생각나는 게 전혀 없었다. 그러므로 데겔티가 왜 그렇게 자신을 친근하게 대했는지도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로니 감독이 어떤 사람이었는지는 똑똑하게 기억났다. 그는 융통성이 없으며 무뚝뚝했고 일 중독자였다. 또한 금욕주의자 같았다. 담배도, 술도 하지 않았고 연애 경험도 없었고 유흥가에는 발도 들이지 않았다. 매일 일이 끝나면 바로 집으로 돌아가 휴식을 취했으며 마치 런던의 시계탑처럼 기계적으로 살았다. 그는 조용한 것을 좋아했으며 유일한 취미는 클래식을 듣는 것뿐이었다.

“뭐 이런…….”

기억을 더듬어 로니에 대한 모든 것을 훑어본 이혁은 자기도 모르게 탄성을 내질렀다.

“이게 정말 사람의 삶인가? 어쩌면 이렇게 재미없게 살 수가!”

어떻게 보면 어제 경기장에서의 일이 그에게 도움이 된 셈이었다. 모두들 그가 머리에 큰 충격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로니의 성격이 좀 바뀌었다고 해도 크게 의문을 품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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