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 관계?"
대부분 남매 관계일 텐데, 이런 일을 굳이 외부인에게 말할 필요가 있을까?
사일예는 팔짱을 끼고 입꼬리를 올린 채, 구경꾼처럼 그와 손진이를 한번 쳐다봤다. "고근묵씨는 이미 부인과 이혼하지 않았나? 왜 아직도 그녀의 사생활에 그렇게 관심이 많은 거지?"
"난 줄곧 고근묵씨의 여자친구가 소씨 아가씨인 줄 알았는데, 밖에 한 명, 집에 한 명이라니. 고근묵씨, 바람기로 따지자면 나 사일예도 당신한테 고개를 숙여야겠군."
그러니까 사람들이 이혼 합의서를 술집에 가져온 거구나. 남편이 밖에서 이렇게 바람을 피우면, 누구라도 참을 수 없을 것이다.
고근묵은 온연이 그의 여동생이 아니길 바라는 게 좋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사씨 집안 전체가 그에게 따질 것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일예는 그의 질문에 정면으로 대답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고근묵이 그를 막지 않았다.
다른 사람을 위해 나서서 그와 맞서는 사운철은 분명히 화가 났다.
"근묵, 난 사일예가 여자를 위해 이렇게 나서는 걸 본 적이 없어."
손진이는 당황스럽고 억울했다.
사일예가 온연을 위해 나섰다고?
그들은 어떻게 만난 거지? 어떻게 아무 소식도 들리지 않았을까?
고근묵은 입술을 꽉 다물고, 눈빛에는 냉기가 가득했다.
의심의 씨앗이 이미 심어졌고, 이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울 차례였다.
술집을 떠난 후, 온연은 할머니가 생전에 살던 집으로 돌아갔다.
할머니의 생전 유언은 그녀가 친척을 찾기를 바라는 것이었다. 부모가 좋지 않더라도 혹시 형제자매라도 있으면 서로 의지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할머니는 평생 자식도 친척도 없이 모든 희망을 그녀에게 쏟았다. 검소하게 살면서 그녀를 키워냈지만, 복을 누리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 꼭 당신의 원수를 갚을게요."
손진이가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도, 그녀는 반드시 흔들어놓을 것이다.
온연은 밤새 뒤져봐도 할머니가 말했던 그녀의 신분에 관한 상자를 찾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고근묵의 전화가 걸려왔다.
"어디 있어?"
"무슨 일이야?" 그녀의 목소리는 전례 없이 냉담했다.
"집에 돌아와. 할 말이 있어."
"그곳은 내 집이 아니야." 그녀는 어두워지기 시작한 하늘을 바라보며 목이 메었다. "할 말이 있으면 전화로 해."
"사일예는 언제 알게 된 거야?"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나와 이혼하려는 건 그와 함께하기 위해서야?"
사일예?
이 이름이 좀 익숙했다.
온연은 갑자기 생각났다. 이 사람이 사씨 집안의 셋째 도련님인 것 같았다.
고근묵이 왜 사일예와 자신의 관계를 오해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미 합의서에 서명했으니 더 이상 깊이 파고들고 싶지 않았다.
"고근묵, 우리는 이미 이혼 합의서에 서명했어. 내 일에 간섭하지 말아줘."
"합의서에 서명했지만, 아직 이혼한 건 아니야." 고근묵의 어조는 매우 차가웠다. "진이가 네 할머니를 해쳤다고 했지? 간병인을 불러왔어."
간병인이 고씨 집안에 갔다고?!
온연은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쥐었다.
그날 이후 아무리 간병인에게 연락해도 닿지 않았는데, 고근묵이 찾아냈다니 놀라웠다.
"좋아, 지금 바로 갈게."
진실을 원한다면?
그럼 그들에게 진실을 보여주겠다.
온연이 고씨 집안에 도착했을 때, 간병인은 보이지 않고 한쪽에서 아침 식사를 즐기고 있는 손진이만 보였다.
손진이는 우아하게 아침을 먹고 있었고, 장씨 아주머니는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손진이가 이 집의 여주인인 줄 알 정도였다.
온연의 담담한 시선이 손진이가 앉은 자리에 머물렀다. 그곳은 그녀가 항상 앉던 자리로, 창가에 환기가 잘 되고 채광이 좋으며 멀리 호수 경치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이었다. 지금은 다른 여자가 차지하고 있었다.
"마님..." 그녀가 들어오자 장씨 아주머니의 얼굴에 당혹감이 스쳤다.
"아이고, 왔구나?" 손진이는 순진무구하게 웃었다. "너를 위해 아침을 준비했는데, 괜찮지?"
온연은 그제서야 테이블 위에 모두 담백한 음식들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분명히 손진이를 위해 특별히 준비한 것이었다.
상황에 따라 처신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하물며 고씨 집안의 월급을 받는 장씨 아주머니는 더욱 그럴 것이다.
온연은 눈에 닿지 않는 미소를 지었다. "소씨 아가씨는 결국 손님이니, 장씨 아주머니가 손님을 대접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
이 '손님'이라는 말은 비꼼이자 경고였다.
하지만 손진이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지금은 손님이지만, 곧 주인이 될 거야."
"그건 내가 이혼하고 싶은지에 달렸지. 내가 원하지 않으면, 넌 영원히 주인이 될 수 없어." 온연은 말하다가 문득 이 방법이 정말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만약 시원하게 이혼해 버리면, 이 개 같은 남녀를 성공시켜주는 꼴이 된다.
할머니가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물러났을 것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손진이 때문에 죽었고, 이혼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손진이에게 복수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과연, 이 말이 나오자 손진이의 표정이 변했다. "너 뭐하려는 거야?"
"그냥 네가 영원히 김다연으로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서."
영원히 김다연으로? 그러면 그녀의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이다!
손진이는 절대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허락할 수 없었다.
"온연, 근묵 오빠가 아니었으면, 네가 여기서 나와 말할 자격도 없었을 거야." 고근묵의 경고를 생각하니 손진이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고근묵은 온연이 그와 몇 년간 부부로 지냈으니 공이 없어도 노고는 있다며, 너무 심하게 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를 극한까지 몰아붙인다면, 더 심한 일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넌 정말 불쌍해. 근묵 오빠는 이미 널 사랑하지 않는데, 넌 아직도 집착하고 있어."
손진이의 말은 날카로운 검처럼 정확히 그녀의 마음을 찔렀다.
온연은 말없이 웃었다.
무슨 사랑이고 사랑하지 않음이고, 고근묵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를 사랑한 적이 없었다.
"소씨 아가씨, 남의 관계에 끼어드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뻔뻔한 사람이지."
"거짓말!" 손진이는 씩씩거리며 달려와 그녀의 얼굴을 잡으려 했고, 온연은 재빨리 옆으로 피했다.
손진이는 발을 멈추지 못하고 앞으로 넘어졌다.
앞에는 어항이 있었다.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가 산산조각 났다.
시간이 멈춘 듯했다.
이어서 가슴을 찢는 듯한 비명이 별장 전체에 울려 퍼졌다.
손진이의 손에 큰 상처가 나서 피가 콸콸 흘러나오는 것이 보였다.
"손, 내 손!" 손진이는 겁에 질려 멍해졌다.
그녀는 주얼리 디자이너로, 손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소씨 집안은 심지어 그녀의 손에 보험까지 들어놓았다.
하지만 지금, 손등에서 손바닥까지 이어진 끔찍한 상처가 있었다.
"온연, 널 죽여버릴 거야!" 손진이는 이 순간 고통도 느끼지 못하고, 온연도 이런 고통을 맛보게 하고 싶었다.
그녀는 길쭉한 유리 조각을 들고 온연에게 달려들어 온연의 얼굴을 할퀴려 했다.
바로 그때, 검은 그림자가 온연 앞을 가로막았고, 그 사람이 손을 뻗어 유리 조각을 잡았다.
피가 유리 조각을 따라 흘러내렸다.
"근묵 오빠!"
"고근묵!"
온연은 멍해졌다.
손진이는 얼어붙었다.
고근묵의 손, 아주 우연히도 같은 위치에, 같은 상처가 났다.
"근묵 오빠, 왜 그녀를 보호하는 거야?" 손진이는 무너졌다.
고근묵은 대답하지 않고, 그녀의 피 흘리는 손을 한번 보더니 눈썹을 찌푸리며 옆에 서서 다가오지 못하는 여자 하인에게 말했다. "가서 박 의사를 불러와."
박 의사는 고씨 집안의 가정의였고, 고씨 집안 바로 옆에 살고 있었다.
온연은 한쪽으로 달려가 약상자를 가져와 소독 도구를 꺼내 고근묵에게 다가갔다. 손진이는 화가 나서 그녀를 세게 밀쳤다.
"꺼져! 다 너 때문이야. 이제 좋겠다. 나와 근묵 오빠 모두 너 때문에 다쳤잖아."
온연은 가만히 서서 고근묵을 바라봤다.
"일부러 그런 건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