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서늘하게 물처럼 차가웠고, 심지영은 식사 자리에서 배지의 일거수일투족을 떠올리며 마음이 답답해져 옥주를 먼저 돌려보내고 혼자서 정원으로 바람을 쐬러 갔다.
먹구름이 달을 가린 밤, 공기는 축축하고 무거워 마치 거대한 바위가 가슴을 누르는 듯했다.
갑자기 번개가 구름을 찢어내며 하늘을 환하게 비췄다
쾅——
먹먹한 천둥소리가 하늘 끝에서 들려오고, 폭우가 시작되었다.
심지영은 정자 안에 앉아 있다가 귓가에 빗소리가 들려오자 그제서야 자신의 주변에 비를 막을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가 번개를 맞으며 방비원으로 뛰어갈지, 아니면 그저 이곳에 서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릴지 고민하고 있을 때, 머리가 아파지게 하는 소나무와 측백나무 향이 다시 그녀의 코끝을 감쌌다.
심지영이 일어나 멀리 바라보자, 배지가 종이 우산을 받쳐 들고 그녀 앞에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