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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33% 무모담 (無貌譚) : 사라진 얼굴들 / Chapter 3: 3-1화 : 감추려고 했던 건...

Chapter 3: 3-1화 : 감추려고 했던 건...

음악실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안쪽에서 흘러나오는 섬뜩한 불협화음이 귓가를 맴돌았다. 애써 무시하고 급식실로 가려던 순간, 나는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설 수밖에 없었다.

 

열려 있는 음악실 문 사이로 무언가 나타났다. 길고 앙상해서 마치 잔가지와 잎을 죄다 쳐낸 나뭇가지처럼 보이는 것이. 그 가느다란 물체가 ‘그것’의 팔이라는 직감이 나를 덮쳐왔다. 팔은 내가 급식실로 가려고 하면 할수록 가까이 다가왔다. 걸음을 멈추면, 팔도 멈췄다. ‘그것’이 날 부르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그리고 팔은 내 생각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듯, 갈퀴처럼 가느다란 손가락 뼈마디를 위아래로 흔들었다. 그리고는 음악실로 서서히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따라오라는 뜻일까. 나는 속는 셈 치고 음악실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텅 빈 음악실 내부에서는 ‘그것’이 온몸을 한껏 뒤틀며 그랜드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것’이 움직일 때마다 튀어나오는 마찰음과 피아노 선율이 섞여 기괴한 소리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내가 음악실로 들어오자 ‘그것’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는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그것’은 내게 다가와 해코지를 하는 대신 음악실을 뱅뱅 돌기 시작했다. 칠판 앞, 책장, 책상 사이사이 등 곳곳을 서성이면서.

 

한동안 음악실을 바쁘게 오가던 ‘그것’이 걸음을 멈춘 곳은 교사용 책상 앞이었다. 책상에 붙어 있는 삼단 서랍, 그 앞에 쭈그리고 앉은 ‘그것’은 다시 팔을 꺼내어 내 등을 쿡쿡 찔렀다. 나는 반신반의하면서도 그것이 하라는 대로 서랍을 열어 보았다. 맨 아래쪽에 있던 칸은 제법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는지, 힘껏 잡아당긴 후에야 열렸다.

 

지금까지 앞선 두 개의 칸을 열면서 ‘그것’이 원하던 물건을 찾지는 못했다. 하지만 세 번째 칸에는 뭔가 있는 듯했다. 나는 서랍을 유심히 살폈다. 낡은 악보 몇 장과 자잘한 잡동사니들 사이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미니 라디오가 보였다.

 

가장 깊숙한 곳에 거의 처박혀 있던 라디오를 집어서 뽀얗게 내려앉은 먼지를 탈탈 털자, ‘그것’이 흡족한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는 손가락 네 개를 펼쳐 세 번 흔들어 보였다. 까딱, 까딱, 까딱. 4가 세 번. 444인가?

 

나는 낡은 라디오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주파수를 맞추라는 것 같은데... 작동이 되기는 할까? 내가 머뭇거리자 ‘그것’이 또다시 등을 쿡쿡 찔렀다. 그래, 일단 하고 보자.

 

시도해본 조합은 4.44, 44.4, 444. 총 세 가지였다. 다행히 어떻게든 신호가 잡히기는 했지만 첫 번째와 두 번째는 평범한 라디오 방송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나더러 사연자들의 이야기나 듣고 있으라고 여기까지 데려온 건 아닐 터였다.

 

다시 해보라고 재촉하듯 등을 찔러대는 ‘그것’ 때문에,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444MHz에 주파수를 맞췄다. 그러자 라디오가 가래를 뱉어내듯 심하게 잡음을 토해내며 치지직거리기 시작했다.

 

지직지직— …이것은 내 마지막 흔적이 될 것이다.”

 

갑자기 라디오에서 어떤 남자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난 그의 배신으로 인해 모든 걸 잃었다.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에 일말의 부끄러움도 없었던 나는 이제 더는 아이들 앞에 설 수 없게 됐다. 단지 학교 돈이 이상하게 새고 있다는 것과 그 일에 내 이름이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뿐이었는데. 믿었던 친구에게만 털어놓으며 고발해야 한다고 이야기했고, 그와 함께 진실을 알리기로 결심을 굳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저지르지도 않은 죄 원인이 되어 있었다. 사팀이 내 책상을 뒤지고, 은 내 이름을 실었다. 조작된 서류라고, 나는 내 이름으로 예산안을 올렸을 뿐 한 푼빼돌리지 다고 외쳤지만, 아무도 듣지 않았다. 아무도 믿지 않았다. 난 철저히 고립되어 갔다. 명예와 꿈은커녕 치욕뒤집어쓴 채로.’

 

남자의 목소리는 ‘치욕만 뒤집어썼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끊겼다. 이런 일이 있었다고? 최근 5년 안에 이런 일이 있었다면 삼촌을 통해서든, 기사를 본 기억이 있든 어떻게든 기억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아마 10년은 더 된 사건이 틀림없었다.

 

내가 곰곰이 생각하고 있는 동안, 라디오에서는 또 다른 음성이 송출되었다. 두 남자가 나누는 대화였다. 대화가 이어지는 동안 ‘그것’은 내 곁에서 미세하게 몸을 떨었다. 마치 기억이라도 되짚는 듯이...

 

“여긴 전부 재단 마음대로야. 심지어 전학 간 애들도 명단에서 빼지 않고 유령 학생으로 만들어서 예산을 뽑아내고 있다고. 바로잡아야 해.”

 

“그냥 네 착각일 수도 있잖아. 재단에서 알면 위험해지는 건 너야.”

 

“착각이 아니야. 파일이 있어.”

 

“△ △, 너는... 대체 왜 편한 길을 두고 가시밭길을 걸어가려고 해?”

 

“.........”

 

“후회할 거야.”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해야 해. ◆◆, 우리 함께하자. ※&#에서 일하는 너라면 더 확실한 증거를 확보할 수 있잖아. 너만 믿는다.”

 

대화는 충격적이었다. 내용도, 대화를 나누는 사람의 정체도. 맨 처음 자기 이야기를 했던 남자의 목소리는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그’로 추정되는 상대방의 목소리는 익숙했다.

 

삼촌. 또 삼촌이다. 내가 어떻게 삼촌의 목소리를 몰라볼 수 있을까. 지금보다는 조금 얇고 높은 톤이지만, 말하는 어조나 발음이 삼촌과 딱 맞아떨어졌다. 그러니 이건 삼촌이 젊었을 때의 목소리일 것이다. 생각해보니, 이 학교에서 일하게 된 후로 뭔가 찝찝한 일이 생길 때마다 항상 삼촌이 엮여 있었다. 머릿속이 너무 복잡해진 나머지 손에 힘이 풀려, 라디오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바닥에 떨어진 라디오는 처음보다 더 격렬하게 잡음을 내보내며 같은 단어만을 반복했다.

 

도서관도서관도서

 

그러다가 퓨즈가 나간 듯 완전히 작동을 멈췄고, 음악실은 단번에 고요해졌다. 이젠 뭘 어떻게 하라는 걸까. 나도 모르게 ‘그것’을 쳐다보았지만, ‘그것’은 천천히 몸을 일으켜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다.

 

이제 내가 음악실에 더 머물러 있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음악실을 빠져나오려다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전신이 뒤틀리고 뼈마디가 드러난 채 연주를 시작하는 ‘그것’. 나는 ‘그것’의 뒤인지, 앞인지 모를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그것’은 실존 인물이고, ‘그것’에게도 이름이 있을 거라고.

 

음악실 문을 닫고 복도로 나오자 아까 있었던 일이 아득한 꿈처럼 느껴졌다. 아무래도 초현실적인 체험이었으니까. 나는 복도와 시계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급식을 다 먹은 학생들은 몇 없었고, 점심시간은 35분이 더 남아있었다. 나는 고민에 빠졌다.

 

라디오의 힌트대로 도서관으로 가서, ‘그것’이 누구였는지 확인해야 할까?

 

아니면 행정실로 가서, 이 혼란스러운 일을 잊고 현실에 몰두해야 할까.

 

① 도서관으로 간다 -> [도서관을 선택]으로 이동

② 행정실로 간다 -> [행정실을 선택]로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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