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 관사가 막 발걸음을 떼어 나가려는데, 맑고 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심씨 아버님, 배지가 늦었습니다. 널리 이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홀 안의 모든 사람들이 밖을 바라보았다.
어두운 뜰 안에, 남자가 문 앞에 꼿꼿이 서 있었다. 키가 훤칠하고, 짙은 녹색 화려한 옷을 입었는데, 차가운 달빛과 하얀 눈빛 아래에서 더욱 쓸쓸해 보였다.
배지의 모습을 본 심씨 아버님은 즉시 두 걸음 빨리 다가가 얼굴에 걱정이 가득한 표정으로 물었다. "어찌 이제야 왔느냐, 현질이 혹시 몸이 불편한가? 만약 불편하다면, 하인을 보내 한마디만 전하면 될 것을, 현질이 이 추위를 무릅쓰고 연회에 올 필요는 없었네."
배지는 예를 갖추어 인사했다. 매우 공손해 보였지만, 어딘가 거리감이 느껴졌다.
"심씨 아버님의 걱정 감사합니다. 현질의 몸은 별 탈이 없습니다. 다만 부 안의 길이 복잡하고, 날이 어둡고 길이 미끄러워서 조금 조심스럽게 걸어왔을 뿐입니다."